지난 2017년 4월23일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미인도를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프리다 칼로로 불리는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을 수사한 검찰이 불법수사를 통해 진품으로 결론 내렸다고 주장하며 유족이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4단독 최형준 판사는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미술과 교수가 국가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가 적법하다고 본 것이다.
‘미인도 위작 사건’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전시를 통해 미인도를 천 화백의 작품으로 처음 소개한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듬해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냐”며 미인도가 위작이라 선언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품이라며 맞서면서 논란이 됐다. 2015년 천 화백이 작고한 뒤에도 ‘미인도는 진품’이라는 주장이 이어지자 유족은 전·현직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을 고소·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16년 12월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열린 천경자 화백 ‘미인도’ 위작 논란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에서 배용원 부장검사가 ‘미인도’가 진품임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서울중앙지검은 5개월간의 수사 끝에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당시 검찰은 엑스(X)선·원적외선·컴퓨터 영상분석·디엔에이(DNA) 분석 등 과학감정 기법을 총동원해 천 화백 작품이 맞다고 판단했다. 유족은 검찰 결론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기각됐다. 대법원에 낸 재정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교수는 검찰이 불법 수사를 통해 진품으로 결론 내려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2019년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천 화백의 유족은 검찰 수사 과정에 수사관이 한 감정위원에게 “둘째 딸이 전날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인정하고 갔다”는 허위사실을 고지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에는 2016년 수사 당시 감정위원이었던 최광진 미술평론가가 증인신문에 나서 “검사가 ‘그냥 진품이라고 보면 어때요’라고 말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고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가 2017년 7월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천경자 코드’ 출간 기자회견에서 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법원은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 화백의 유족인 김 교수는 패소 뒤 입장문을 내 “어머니가 그토록 절규했음에도 외면한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실망은 제 개인만이 아니며 예술종사자 그리고 온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며 “자식으로서 제 할 일을 했을 뿐이므로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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