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에서 대원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파행의 징후는 여러 차례 나타났고, 막을 기회도 얼마든지 있었다.’
뻘밭으로 변해버린 야영장과 그 위에 세워진 턱없이 부족하고도 열악한 시설, 폭염 속 온열질환 속출 등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12일 간의 대회 기간에 나타난 문제점 들 중 그 어느 하나 예고되지 않은 것은 없었다.
2017년 8월,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새만금 유치가 결정되고 6년. 그 사이 정권 교체가 있었다고는 하나,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이 여러 차례 지적된 만큼 바로 잡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놓쳤다는 지적들이 잇따르고 있다.
행사를 기획한 잼버리 조직위원회의의 운영 및 예산 집행에 문제점은 없었는지를 비롯해, 잼버리 개최 직전까지 진행된 정부의 안전 점검에서 나왔던 내용들이 왜 개선되지 않았는지 등도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행사 리허설 ‘프레 젬버리 전격 취소’…파행의 징후들 왜 놓쳤나
잼버리 행사가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난해부터 ‘잼버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들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7월19일, ‘프레 잼버리’(8월2~7일 예정)가 전격 취소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잼버리의 리허설격인 프레 잼버리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 1300여명의 대원이 참여할 예정이었다. 정부는 당시 코로나19 감염 확산 등을 이유로 갑자기 대회를 취소했는데, 코로나19는 표면적인 이유고 사실상 폭우시 ‘배수 문제가 프레 잼버리 취소 이유’라는 말이 나왔다.
그해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대회 준비 부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대책을 다 세워놨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해 9월까지 여가부가 상·하수도, 덩굴터널 등 잼버리 기반시설 설치를 위해 전북도에 교부한 39억2100만원 중 실제 집행된 예산(14억9600만원) 비율은 38.2%에 불과했다.
한국스카우트연맹 관계자는 13일 “프레 잼버리는 야영 생활 중 나타날 수 있는 시설, 급식, 위생 등의 문제를 각 참가국 대표단, 세계스카우트연맹과 함께 점검해서 보완책을 마련하는 자리”라며 “예행 연습 기회가 없었던 점이 뼈아픈 대목”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지난해 3월과 7월 전라북도와 관계 중앙부처 등이 참여한 합동 현장점검이 두차례나 이뤄졌지만, 이런 문제들은 바로잡히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태풍·호우·폭염 등 자연재난 대응체계와 배수시설 정비 현황, 온열환자 구조·구급 대응체계 등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전북도도 별도로 지난 6월부터 “매주 잼버리 준비 현황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만금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해야 할 만큼 폭염과 태풍 앞에서 무대책이었다. 야영지가 있는 부안군에는 지난달 28일부터 폭염경보가 발령됐지만, 정부는 폭염 관련 추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고온다습한 영지 내에서 온열증상자를 포함해 벌레물림, 피부발진 등으로 환자 2100여명이 발생하며 논란이 된 뒤에야, 정부는 4일 추가 예산을 투입해 냉방버스 262대를 배치하고 그늘막 69동을 추가 설치했다.
조직위가 만든 ‘자연재난 위기대응 행동 매뉴얼’은 무용지물이었다. 태풍 ‘심각’ 단계인 경우 미리 지정한 근거리 실내 구호소 204곳, 원거리 실내 구호소 138곳에 대원들을 대피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놨으나, 대피소로 지정한 곳이 학교, 복지관, 체육관 등으로 잠시 머물 수만 있을 뿐 생활할 수 없는 곳이었다. 태풍 ‘카눈’이 지난 뒤 물에 잠긴 야영지로 돌아올 수 없어, 대원들은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국 각지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위기 신호는 대회 전날까지도 울렸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전기안전공사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 잼버리 야영지 시설안전점검 현황’ 자료를 보면,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잼버리 개막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야영지 내 전기설비 343개소를 점검해 적합 판정을 받은 설비는 198개(57.7%)에 그쳤다. 사실상 전기 설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가 열린 셈이다.
✅ 3년 간 쓴 돈만 1171억원…그 많은 예산 어디 썼나
부실 준비 논란에 휩싸인 이번 잼버리는 2021년부터 지난 3년간 1171억원(잼버리 행사 이전 기준)의 총사업비가 집행됐다. 4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하지만 폭염 대비 물품 구입에 쓰인 돈은 이 가운데 2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여권에선 ‘주무 책임기관은 집행위원장을 맡은 전북도’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잼버리 총사업비 1171억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617억원은 올해 집행됐다. 조직위가 전체 예산 중 870억원을 사용했고, 전북도가 기반시설 조성, 대집회장 조성, 강제 배수 시설 명목으로 265억원의 예산을 썼다.
조직위는 야영장 조성 등 시설비로 130억원을 썼고, 조직위 운영비로 잡힌 740억원 가운데도, 인건비 등에 사용한 돈은 84억원에 불과하며 656억원은 야영 및 프로그램 운영 사업비로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개막 직후는 물론, 태풍 카눈이 지난 직후에도, 새만금 야영지에서 진흙탕과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발견돼,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의 감찰, 감사원 감사는 물론 검찰 수사 등을 거론하며, 1171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울러 오는 16일과 2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를 열어, 사전에 이런 파행 조짐들이 있었는데도, 왜 제대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는지를 집중 따져 묻겠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지난 2일 타이 스카우트 남성 지도자가 여자 샤워실에 침입하며 불거진 성폭력 의혹 규명해야 할 것 중 하나다. 최창행 조직위 사무총장은 지난 6일 브리핑에서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조사했는데 ‘문화적 차이’로 인해 발생한 일로 보고 경고 조치를 취한 뒤 사건을 종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성적 괴롭힘은 가해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당 언행이 타인에게 성적인 불쾌감을 주었는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며 “조직위는 잼버리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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