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오산시 운천초등학교 2학년 정지율(8)양이 지난달 24일 오후 인공지능(AI)를 활용해 미술 작품을 만든 뒤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무지개, 고양이, 고화질.’
지난달 24일 오후 경기 오산시 운천초등학교에서 열린 ‘인공지능(AI) 미술코딩 수업’. 2학년 정지율(8)양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그림 디자인 프로그램(캔바)에 낱말 세개를 입력하자, 눈코입은 없지만 무지개색으로 칠해진 고양이 얼굴 그림이 2~3초 만에 완성됐다.
명령어가 구체적일수록 인공지능 그림은 더 현실성 있게 또렷해졌다. 3학년 정유나(9)양은 또 다른 프로그램(투닝)에 ‘그림을 그리다 물감을 쏟음’, ‘그림을 그리다 망쳐서 화가 남’ 등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명령어를 입력했다. 그러자 특정한 캐릭터가 붓을 들고 화난 표정을 짓고 캔버스 앞에서 물감을 쏟은 상황 등이 반영된 결과물이 나왔다.
학생들은 처음 접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낱말 몇개에 수준 높은 그림을 만들어 내자 신기하다는 듯 감탄사를 쏟아냈다. ‘동물 의사’라는 명령어를 넣자 ‘꼬리가 있는 사람’이 그려질 때나, ‘피아노 선생님’을 입력하자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반대로 그려진 작품이 나올 땐 반 전체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경기 오산시 운천초 학생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인공지능을 활용해 미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운천초처럼 요즘 초등학교에선 직접 연필과 물감으로 그림 그리는 ‘미술 수업’만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명령어를 입력해야 보다 정교한 그림이 나올지 고민하는 ‘인공지능 미술코딩 수업’ 시간도 있다. 아직 방과 후 수업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긴 하지만, 챗지피티(ChatGPT)로 촉발된 생성형 에이아이 열풍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온 모습이다. 이날 수업을 이끈 박태호(29) 운천초 교사는 “인공지능에 익숙하지 않은 저학년 아이들이 관련 체험을 해두면, 고학년이 됐을 때 관련 수업엔 훨씬 더 적응도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지난해 겨울방학부터 전국 초·중·고 학생들이 인공지능 체험 및 소프트웨어를 배울 수 있도록 마련한 ‘디지털 새싹 캠프’에 지금까지 26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했다. 올여름에만 전국 1275개 학교에서 700여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저학년 초등학생들이 일종의 ‘인공지능 맛보기’ 체험 위주로 이뤄진다면, 기술에 보다 익숙한 중학생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타트업 창업’ 관련 수업을 듣기도 한다. 지난달 21일 경기 용인 신봉중에서는 이미 챗지피티에 익숙한 1~3학년 학생 27명이 팀을 짜고 앱 서비스 사업화와 관련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앞서 챗지피티를 활용해 시장 조사 등 사업 모델 구성을 위한 기초 작업을 끝낸 뒤, 이날은 실제 스타트업 창업 기획 단계에서 사업의 주요 지표와 비용 구조 등을 한눈에 시각화하는 작업을 위한 툴(린캔버스)을 배우는 중이었다.
이 학교 1학년 이서준(13)군이 속한 팀은 피시(PC) 게임을 하다가 게임 창을 닫지 않아도 도중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군은 “기존에도 챗지피티를 접해봤지만, 이번엔 게임과 음악 연동을 위한 단축키 구현 방식, 프로그램화에 필요한 다른 인공지능 앱 활용 방법을 물어보는 데도 활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인공지능 수업은 단순히 기술 체험·교육만이 아닌 진로를 고민할 때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최아린(13)양은 “미술 전공을 생각 중인데, 에이아이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 같아 불안해서 관련 수업을 찾아보게 됐다”며 “이번 수업으로 에이아이가 어떤 건지 좀 더 알게 됐고, 오히려 이걸 활용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바른AI연구센터장)는 “인공지능 기술의 변화 속도와 학생들의 습득 속도를 고려해 정규 정보 교과에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인공지능 실습 교육뿐만 아니라 기술을 오용하지 않는 윤리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구연수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