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를 기다리다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3대 사회개혁 과제 중 하나인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이 27일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연 뒤 언론 설명회를 통해 이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후 정부안은 국회에 제출된다.
초미의 관심 사안인 개혁안에 대해,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24일 “솔직히 여전히 안갯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상기류가 복지부와 국회 등에서 잇따라 감지된다. “이번 종합계획에서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등에 대해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지 않고 개혁의 방향성 정도만 담길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모수개혁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구조 개편의 포괄적 방향성만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마치 간을 보는 듯한 이런 보도와 발언에 대해 복지부는 강한 부정 대신 “확정된 바 없다”는 설명자료만 내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조만간 공개되겠지만, ‘구체안이 없는 연금개혁 정부안’이 제시된다면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24개 시나리오를 낸 탓에 어느 하나로 정할 수 없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21대 국회에선 어차피 물 건너갔다”, “여론이 엇갈린다”는 등 그 어떤 것도 구실이 될 수 없다.
구체안 없는 연금개혁안은 가뜩이나 표류해온 연금개혁 논의에 정부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부 관계자마저 “지지부진한 국회의 연금 논의 동력마저 사그라지게 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마당이다. 일각에서는 총선을 의식한 ‘윗선’의 결정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이런 무책임한 연금개혁안은 오히려 총선에서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맹탕’ 연금개혁안은 대통령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후안무치한 자기부정이자 약속 파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여러차례 연금개혁을 공언했다. 구체적인 개혁 방식을 두고서 대통령실은 ‘정부는 모수개혁, 국회는 구조개혁’이란 투트랙으로 하겠다고 밝혔고,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여러 자리에서 “구체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 사회가 연금개혁사의 엄중한 순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마침 26일 윤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다. 의대 증원처럼 윤 대통령은 연금개혁에서도 결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정부는 정부의 할 일을 다하면 된다. 최종 결정은 결국 국회의 몫이지 않은가. 아직 시간이 있다. 책임 있는 정부안이 나오길 진심으로 고대한다.
이창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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