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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군형법 추행죄’ 차별과 혐오에 20년 눈 감은 헌재

등록 2023-10-29 08:00수정 2023-10-29 19:25

4번의 헌법재판소 ‘군형법 92조의6’ 합헌 결정 살펴보니
2017년 7월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성소수자들이 군복을 입고 감옥에 갇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7월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성소수자들이 군복을 입고 감옥에 갇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헌법재판소가 4번째 ‘합헌’ 결정을 내린 군형법 추행죄(92조의6)는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 조항으로 꼽힌다. 현재 법문상으로는 행위자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을 처벌하는 내용인데, 실제로는 합의 여부, 시기 및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성군인 간 성적 행위에만 적용됐기 때문이다.

남군 간 합의된 성행위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이 조항은 수십년간 ‘위헌’ 지적을 받아왔지만, 헌재는 매번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원칙 △평등원칙에 모두 부합한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27일 한겨레가 지난 20여년간 헌재가 내놓은 4번의 ‘합헌 결정문’을 살펴보니, 헌재가 규정하는 군형법 추행죄의 정의조차 번번이 달라졌다.

■ 합의한 성행위도 처벌? 혐오에 눈 감은 헌재

1962년 제정 때 군형법 추행죄는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을 처벌하는 내용이었는데, 2013년 ‘계간’을 ‘항문성교’로 표현만 바꿔 유지됐다. 60년간 법문은 거의 그대론데 헌재가 말하는 처벌대상은 계속 바뀌어왔다. 시대적 변화나 헌재 내부의 소수의견, 대법원의 판례변경 등을 받아들이며 소극적으로 군형법 추행죄에 대한 헌재의 입장을 조정해온 탓이다.

2002년 헌재는 ‘남군 간 합의된 키스와 포옹’도 처벌대상으로 봤다. 헌재는 “계간 또는 일반인 입장에서 추행행위로 평가될 행위”를 한 남군을 처벌대상으로 보고 “변태성 성적만족행위의 모든 형태를 미리 예상해 일일이 열거하는 방식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다며 계간 외 사례로 키스와 포옹을 들었다. ‘합의로 은밀히 이뤄진 남군 간 성행위가 추행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소수의견에는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2011년에도 이어졌다.

2016년 헌재는 “폭행·협박 등 강제성이 수반되지 않고,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지도 않은” 남군 간 성행위로 처벌대상을 좁혀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군형법에 (준)강제추행죄가 별도로 신설된 이상 ‘추행죄’의 의미가 달라져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헌재는 강제추행이나 준강제추행에 해당하지 않는 ‘위력을 사용한 추행’을 위해 이 조항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여전히 ‘남군 간 합의된 성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피했다.

7년이 흘러 군형법 추행죄를 네 번째 심판대에 올린 헌재는 지난 26일 ‘위력에 의한 동성 군인 간 추행’과 ‘사적 공간 외 동성 군인 간 성행위’만 처벌대상이라며 재차 입장을 바꿨다. 지난해 대법원이 ‘사적 공간에서 합의로 이뤄진 동성 군인 간 성행위에는 추행죄를 적용할 수 없다’며 판례를 변경하자, 이를 가장 최소한으로 반영한 것이다. 군대 내 ‘이성 간’에 벌어지는 성폭력에 대한 처벌 공백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남성 간 위력에 의한 추행’을 처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형법 추행죄를 존치하는 헌재 태도에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헌재는 이게 마치 군 내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처럼 말하지만 정말 위력에 의한 추행이 걱정된다면 이 조항을 없애고 성별 구분 없이 위력에 의한 추행을 막는 조항이나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하는 것이 맞다”며 “영내 이성 군인 간 성행위는 징계로 끝나는 마당에 동성 군인의 성행위만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 “동성애 탓 사기 저하” 헌재의 존재이유는?

지난 20년간 헌재는 마지못해 군형법 추행죄의 적용 범위를 좁혀왔지만 ‘동성애=비정상’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만큼은 한치도 개선하지 못했다. 헌재는 특히 이 조항의 ‘차별의 합리성’을 따지는 부분에서 남성 간 성행위를 비정상으로 보는 ‘혐오적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헌재는 “혈기왕성한 젊은 남성 의무복무자들은 생활관이나 샤워실 등 생활공간까지 모두 공유하면서 장기간의 폐쇄적인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 자신이 함께 생활하는 다른 동료 군인의 성적 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부담하게 하는 것은 군대 전체 사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남군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군 영내에 동성애자가 존재하면 남군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소리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이 조항은 동성애를 처벌하려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다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애매모호한 조항을 그대로 두면 수사기관과 법원이 이를 넓게 해석할 여지를 방치하는 꼴”이라며 “‘좁게 해석하면 되니까 위헌은 아니다’는 헌재의 태도는 무책임이다. 이런 명백한 차별 조항에도 위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헌재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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