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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리포트] 용산어린이 살해사건 그 이후/이유진

등록 2006-04-07 10:21수정 2006-04-10 11:14

서울 용산에서 어린이성추행 전과자인 이웃 어른한테 살해당한 어린이의 49재 날인 6일 오후 ‘아하!청소년 성문화센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연 추모제에서 피해 어린이의 넋을 위로하는 살풀이가 펼쳐지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서울 용산에서 어린이성추행 전과자인 이웃 어른한테 살해당한 어린이의 49재 날인 6일 오후 ‘아하!청소년 성문화센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연 추모제에서 피해 어린이의 넋을 위로하는 살풀이가 펼쳐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 지난 2월, 날씨 맑음. 용산의 한 동네.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이 용산 어린이 성폭력 살해사건 피해 유가족의 집을 위로차 방문했을 때였다.

“저기 저 새 좀 봐!”

대문 앞에서 장관을 기다리던 기자들 가운데 누군가 겨울눈이 난 나무 사이를 가리켰다. 그건, 한 마리 작은 새였다. 마당에 서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들락날락하던 이름 모를 작은 새는 흡사 세상에 다시 돌아온 아이의 넋 같기도 했다.

30분쯤 시간이 흐르고, 유가족을 만나고 나온 장관은 골목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유가족들은 아이의 죽음이 헛되이 잊혀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며 전했다. 장관과 함께 유가족을 만나고 온 여성가족부 한 관계자는 “정작 가족들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의연했다”며 “그들을 지켜보는 내가 오히려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여성가족부는 아이의 장례가 치러진 매년 2월22일을 아동성폭력 추방의 날인 ‘수호천사의 날’로 삼겠다고 했다.

‘수호천사’는 정작 죽은 아이에게 붙여줄 이름이 아니라, 이 땅의 어른들이 하마 예전에 자임해야 하는 거였다. 그랬다면, 지금도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웃고 있을지도 모를텐데.

#2. 날씨 잔뜩 찌푸림. 명동성당 들머리 행사장.

세상은 빠르게 아이를 잊어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월드컵, 지자체 선거, 판교 로또,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 떠들썩한 각종 이슈로 그 사건이 잊혀지나 싶었는데, 전환점이 마련됐다.

4월6일. 용산 어린이 성폭력 살해사건 피해자 49재를 맞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선 ‘성폭력 피해 아동을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와이엠시에이), 청소년을위한내일여성센터 등 청소년 및 여성단체에서 부모의 동의로 조심스럽게 마련한 이 행사에는 청소년, 기업가, 여성단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해 추도사를 읽고 퍼포먼스를 벌이며 먼저 간 어린 아이들의 넋을 달랬다.

이날 참가자들이 다시 기억 속에 불러낸 아이들은 4명. 99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전과가 있거나 동일 범죄로 구속된 적이 있던 동네 아저씨, 이웃 아저씨, 이웃집 형에게 성폭행 또는 성추행 뒤 살해당한 남녀 어린이들이었다. 500여 어린이 성폭력 가족들의 모임인 한국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 송기운 대표는 “며칠 전에도 5살짜리 한 남자 아이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 단체에 도움을 구했는데, 아이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며 “상처가 크게 남은 것 같아 너무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낮 12시30분경.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행사가 시작됐다. 소복을 곱게 차려입은 용인대 정고을 교수의 살풀이로 시작한 행사장은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정 교수가 작은 나무 의자를 들고 나와 그 위에 종이 꽃을 바치자, 펼침막을 들고 있던 여성단체 관계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잠들라네… 참으라네….” 비통한 노랫소리에 맞춰 정 교수가 종이로 된 한복을 찢고 땅바닥에 엎드리자 그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내일여성센터 김영란 소장은 추도사에서 “우리는 성폭력에 무관심한 사회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며 “성폭력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너희들… 늦었지만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고 글을 읽었다.

청소년들도 자릴 함께 했다. “제 주변에도 성폭력 당한 아이가 있었어요.” 미리 도착해 몸 매무새를 단정하게 매만지며 행사를 준비하던 나나(17·하자작업장학교)는 내내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막상 검은 꽃을 머리에 쓰자 떨리는 목소리로 사람들 앞에 섰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술에 취한 사람 곁에 가지 말고 어두운 곳을 피해다니면 아동ㆍ청소년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건가요….”

#3. 남은 이야기

피해 어린이의 부모들은 오전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49재를 올리고 조금 늦게 행사장에 도착했다. 젊은 부모는 지친 기색이었지만 내내 담담하게 행사를 지켜봤다. 피해 어린이의 아버지는 그동안 몇차례 주변을 통해 “어린이 성폭력 관련 제도 개선에 힘을 보태겠다”고 의지를 밝혀왔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유가족들은 어린이성폭력 추방의 날이 제정되면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겠다고 뜻을 전한 바 있다.

흔히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가족들은 주위와 연락을 끊고 언론을 피해 숨어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남은 가족들의 상처가 덧날까 우려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들은 달랐다. 피해 어린이의 아버지에게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잊을 만할 때 상처가 오히려 덧날 수도 있을텐데. 그는 “(가해자가) 가족들에게 한번도 사죄와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며 “참회하긴커녕 오히려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려 애쓰는 걸 보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또 “어린이 대상 성폭력 범죄의 근본부터 막을 수 있도록 모든 부모들이 (성폭력범의 소재를) 정확히 알고 대응할 수 있게 성폭력 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해야 한다”며 “국가는 주변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릴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범의 취업제한에 대해서도 “택시, 문방구, 비디오대여점, 신발가게 등에 취업을 하지 못하게 해 포괄적으로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번 사건 뒤, 정부와 사회는 이례적으로 성폭력범에 대한 처벌 요건 강화와 법개정을 약속했지만 부모들은 아쉬움이 큰 듯했다. 지난 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용산 초등학생 성폭력 살해사건 1차 공판 때도 피해 가족들은 공판 기일을 전달받지 못했다. 피해 어린이 부모가 직접 나서서 시민단체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야 겨우 공판 기일을 전달받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피해 어린이 아버지는 “적어도 공판 기일이나 사건 내용은 우리가 알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이런 부분을 알려주는 법률서비스가 필요할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대개 성폭력 사건은 이상하게도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큰 굴레가 씌어지곤 한다. 가해자 가족들이 피해자를 찾아가 합의를 종용하는 일도 다반사다. 법정으로 가면 더 심하다. 자신이 성폭력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입증 책임’은 피해자에게 온통 전가된다. 아이들은 더하다. 아이들에게 일관된 진술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6하원칙’을 지켜 진술하는 일은 웬만큼 배운 어른에게도 힘든 노릇이다. 어린이 성폭력 피해를 막으려면 필요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어른들의 그릇된 성적 욕망에 희생되는 아이들의 수가 더 이상 늘어나선 안 될 테니까. 당연한 일 같지만, 피해자 가족들에겐 계란으로 바위치기 만큼이나 힘든 일처럼 보인다.

이유진 기자
이유진 기자
피해자 가족에게 전화를 걸자, 헤어진 연인을 안타깝게 기다리는 내용의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가슴이 퍽 막혔다. 잃어버린 아이를 향해, 애타게 돌아오라 부르는 부모들의 심정이 쓰리게 전해져왔다.

지난 2월 아이의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부터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좀체 뒤를 이어갈 수 없었다. 기어이 쓰고야 만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다신 씌어지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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