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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성성이 뜬다] ① 여자 옆이 좋아

등록 2006-06-15 19:39수정 2006-06-16 18:02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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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배우는 직업군인 “가정생활 행복해졌다” 웃음
‘억눌린 여성성’에 남성들도 상처 “경쟁 분위기 남자모임은 불편”
[여성성이 뜬다] ① 여자 옆이 좋아
남자답게? “가부장적 남성성 벗으니 편안”

직업군인 이아무개(36) 소령과 박아무개(33) 대위는 지난 3월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퇴근 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열리는 ‘비폭력 대화’ 강의를 듣고 있다. 비폭력 대화란 자신과 상대방의 욕구를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써 온전히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화법. 미국 임상심리학자인 마셜 로젠버그 박사가 개발했다. 두 사람은 지시와 명령으로 주로 이뤄진 군대식 말투가 자신들도 모르게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이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이 소령은 “예전엔 네 살배기 딸이 울면 아내에게 달래라고 지시했지만 이제는 딸에게 왜 우느냐고 묻지 아내를 나무라지는 않는다”며 “이런 변화에 감동하고 행복해하는 아내 때문에 나도 웃음소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박 대위도 “화가 나도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으면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고, 아내의 수다에도 공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명령·복종의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군대에서도 이런 방법이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가정생활이 더욱 행복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위계와 서열을 따지는 가부장적 남성성이 여성은 물론 남성들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아무개(35)씨. 서울에서 ‘명문대학’을 나온 그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될까봐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고교 동문, 학과 남자 동기들 모임 등 의식적으로 남자들 모임에 끼려고 노력했지만 ‘출세’한 이들이 주로 큰 목소리를 내는 모임은 재미가 없었다. 특히 같은 대학을 나온 동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그에게 큰 고통을 줬다.

가정에서도 비슷했다. 지금은 자신이 자란 환경을 이해하고 변하기를 기다려주는 아내가 고맙지만 아내로부터 가부장의 권위를 부정당할 때마다 마음에는 생채기가 났다. 결국 우울증이 찾아와 정신과를 찾았다. “경상도 남자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의사로부터 “당신은 여성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감기가 걸린 이유를 알았다.”

이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문화센터에서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치유 글쓰기’ 강좌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경제력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식구들을 지휘하며 ‘남자답게’ 살 수 있었던 아버지 세대와 지금 30~40대 남성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강요된 남성성과 이를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상처받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 자신도 그랬다. 그는 “부유한 남성은 남성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고급 문화의 향유로 풀 수 있지만 빈민층 남성들은 가정폭력과 술로 해소한다”며 “기회가 닿으면 빈민 지역의 남성들을 위한 치유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남성의 상징인 아버지는 가족 안에서 거북한 상대로 인식되고 있다. 〈한겨레〉가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전국 18~59살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지난달 23~24일 벌인 설문조사에서, 남성은 ‘가족 중 대화하기 불편한 사람’이 친척·조부모(17.1%) 다음으로 아버지(12.0%)라고 답했다. 어머니가 불편하다는 남성은 2.0%에 그쳤다.

남성 간호사 이송로(27)씨. 대표적인 ‘돌봄 노동자’인 그는 여성들과 어울리며 자기 안의 ‘여성성’을 찾았다. 취직이 잘 될 것 같아 선택했던 간호학과 동기 120명 가운데 남자는 6명뿐. 처음엔 여자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네 시간 동안 수다떨기’가 지루했지만, 상대의 처지를 공감·지지하는 여자들의 의사소통과 사고방식을 자연스레 체득했다. 대학 2학년 때 우연히 참가한 생태주의 캠프에서 생명·평화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고, 여성주의 모임에 나가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성을 계발한 간호대 남자 동기들은 그렇지 않지만, 모이면 단란주점을 순례하고 ‘잘나가는’ 친구를 정점으로 묘한 권력관계가 생기는 남자들 모임은 재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혜신 심리분석연구소’ 정혜신 소장은 “여성에게서 태어나, 여성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인간은 누구나 경쟁적·공격적인 남성성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포용적인 여성성을 획득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성을 긍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강요받은 남성성을 벗어던지고 원초적인 여성성으로 회귀하려는 현상이 예전보다 쉽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민식 ‘마음사랑 상담센터’ 대표도 “남성들이 힘과 지배의 논리가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비폭력 대화처럼 유대감·상호의존·평화 등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조선시대 여성 삶 되짚은 국문학자 정창권씨
역사 속 여성 ‘통 크고 너른 품’ 나·가족·이웃·국가 한데 품어

최근 18세기 제주 여성 거상 김만덕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를 쓴 고려대 국문과 초빙교수 정창권(40)씨는 ‘여자에 집착하는’ 남자다. 그는 “탐욕과 무한경쟁 등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칠 인문학적 대안이 바로 재물을 벌어 나누고, 버리고, 즐길 줄 아는 김만덕 같은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통이 크고, 사람을 억압하지 않으며 너른 품으로 보듬고 보살필 줄 안다.” 주인공의 성격을 일부러 꾸며낸 게 아니다. 여성문학에 관심을 갖고 여성의 역사를 살펴본 결과 여성들이 그런 특징을 갖고 있더라는 얘기다.

10여년 전부터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그는 “여성·여성성이 억압받고 평가절하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일 뿐인데, 이를 여전히 폄하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역사에 파묻히고 소외된 여성의 이야기를 소설로 다루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고전문학의 재평가에도 적극 나서게 됐다. 그래서 펴낸 책이 17세기 조선 여성의 곡절 어린 삶을 그린 〈향랑, 산유화로 지다〉와 〈한국 고전여성소설의 재발견〉 등이다.

정씨는 “일상사를 다룬 여성문학이 문학의 정수”라고 여긴다. 국가, 유교적 가치 등 거대담론 일색인 남성문학보다 ‘수준 낮다’고 평가돼 왔지만, 여성문학은 삶과 생활을 녹여내는 문학의 본질에 가깝고, 상상력도 훨씬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는 1967년 낙선재에서 발견된 〈완월회맹연〉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180권에 이르는 이 소설은 여성이 썼기 때문에 일상과 가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일과 획기적인 상상력이 들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이미 알려진 옛 여성 작가와 작품이 가족 이데올로기에 묻혀 ‘현모양처의 고상한 취미’로만 여겨지는 것과 관련해 “정치 문제에만 집착한 남성과 달리 허난설헌이나 황진이의 시는 나와 가족, 이웃, 국가, 지상과 천상까지 어마어마한 상상력의 폭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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