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제는 평생직업시대 ①
실업은 공포다. 길어지면 가정이 파괴되고 삶이 무너진다. 해마다 늘던 실업자는 지난해 88만명에 이르렀다. 실업이 ‘빠져나올 수 있는 함정’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덫’이 되고 있다. 고용 총량을 늘리는 것에 못잖게, 기존 고용의 공급과 수요를 적절히 조정하는 노력도 절실하다. 고용서비스·직업훈련 등 ‘실업의 덫’에 맞서는 고용 인프라 실태와 과제를 다섯차례에 걸쳐 싣는다.
#1 세무사 사무실에서 회계일을 보던 유혜련(32·가명·인천 계양구)씨는 지난 5월 실직했다. 막막한 심정에 우선 떠올린 게 노동부의 고용지원센터였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3년 전 일이 떠올라서다. 당시에도 실업상태였던 유씨는 고용지원센터를 찾았지만 시간만 낭비했다.
자신의 직능인 세무회계 일거리가 없었던 탓이다. 유씨는 이번엔 새 직업을 찾기로 마음먹고 사설학원에서 ‘포토숍’ 직업훈련 과정(3개월)을 이수했다. 그러나 이씨에게 들어온 일자리는 영세 간판가게가 전부였다. 결국 이씨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지난달 어렵게 다시 세무사 사무실에 취직했다. 이씨는 “고용지원센터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아는 사람 소개가 제일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2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기더 쇼언슨(32·여)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지난달 16일 오후 덴마크 코펜하겐 중심가에 있는 공공고용센터(AF)에선 쇼언슨 등 10여명이 방문자용 컴퓨터로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4년 동안 중소기업에서 사무직 일을 하다, 한 달 전에 실직했다”는 쇼언슨은 “공공고용센터에서 소개한 몇몇 회사에 면접을 봤지만 더 좋은 곳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구직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곳에 오면 반드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와 쇼언슨은 32살 동갑 여성이다. 그러나 실업탈출 방법은 달랐다. 이씨는 ‘아는 사람’을 동원했고, 쇼언슨은 공공 고용기관을 이용했다.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실업은 철저히 개인의 문제”라며 “실업의 고통과 취업까지 모두 내가 책임져야 했다”고 말했다. 쇼언슨은 “실업자가 늘면 세금이 줄고 사회문제가 발생한다”며 “실업은 당연히 나라가 해결할 몫”이라고 말했다.
이씨만이 아니라 한국의 실업자들은 일자리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구인·구직을 뒷받침하는 고용 서비스와 취업능력을 키워주는 직업훈련 등 고용안정 인프라가 하나같이 부실한 탓이다.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비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구직 포기자가 통계청 발표 기준으로도 2003년 9만명, 2004년 10만명, 2005년 12만5000명으로 늘고 있는 게 증거다. 실업기간이 길어질수록 취업은 더욱 어렵다. 장기 실업자 증가는 사회·경제적 불안 요소다.
덴마크·독일·영국 등 선진국들은 고용 서비스와 직업훈련의 체계화를 통해 ‘평생직업 시대’를 일찍부터 열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야 시범고용서비스센터 여섯 곳에 심층상담·재취업 프로그램개발 등을 도입하는 등 걸음마를 뗐다. 노동계와 경영계도 고용 서비스 문제에 아직 무관심하다. 고용 인프라의 선진화는 고용총량 확대와 함께 ‘실업 극복’의 두 날개다.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고용 인프라 문제 해결에는 노·사·정 파트너십 확보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 지역, 업종, 개별기업 등 중층적 고용 서비스망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펜하겐(덴마크)/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덴마크·독일·영국 등 선진국들은 고용 서비스와 직업훈련의 체계화를 통해 ‘평생직업 시대’를 일찍부터 열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야 시범고용서비스센터 여섯 곳에 심층상담·재취업 프로그램개발 등을 도입하는 등 걸음마를 뗐다. 노동계와 경영계도 고용 서비스 문제에 아직 무관심하다. 고용 인프라의 선진화는 고용총량 확대와 함께 ‘실업 극복’의 두 날개다.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고용 인프라 문제 해결에는 노·사·정 파트너십 확보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 지역, 업종, 개별기업 등 중층적 고용 서비스망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펜하겐(덴마크)/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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