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관제사 박현일씨.
새해 첫 새벽을 여는 사람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제주에어 101. 클리어 투 제주, 알파 원 위스키, 브라보 576, 플라이트 레벨 투 제로 제로!”
2007년 1월1일 아침 6시30분, 서울 김포공항 관제탑의 새해 첫 근무자인 박현일(34) 관제사가 무전으로 제주항공 7C191기 상석곤(60) 기장에게 인사를 건넨다. 활주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60m 높이 관제실에서 스무 가지가 넘는 단말기로 온갖 정보를 확인하며 비행기들과 교신한다. 새해 첫 비행기를 관제하는 박씨의 바람은 역시 무사고. 지난해는 비행기가 우박을 맞아 비상착륙을 하고, 이륙하다 엔진에 불이 나는 등 아찔한 순간들이 유독 잦았다. 개인적인 소망도 있다. 영어능력 평가를 무사히 통과하고, 항공대 석사논문을 마치는 일이다. 잔병치레가 많은 여섯 살짜리 아들의 건강도 함께 빈다.
〈박씨처럼 긴장된 일터에서 새해 첫 여명을 맞는 이들의 새해 소망은 좀더 일찍 하늘에 가닿음직하다.
한국방송〉의 새해 첫새벽은 이은상 기술감독이 열었다. 1텔레비전 주조정실에서 근무하는 이 감독은 전날 오후 6시부터 1일 아침 9시까지 밤샘근무를 맡았다. 밤을 지나 새벽까지 전파가 제대로 나가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이다. 입사 27년차인 이 감독은 “졸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끼리는 ‘전방 철책 근무’라고 부른다”며 “지난해에는 각종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올해는 나라가 평안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서울 영등포구 〈한겨레〉 양평문래지국에서 일하는 남궁훈(28)씨의 새해 첫날은 새벽 1시30분 시작됐다. 신문에 끼워 배달할 광고 전단지를 정리하는 등 발송 준비를 마친 뒤 4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양평동, 당산동 일대에 신문을 배달한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남궁씨는 생활비를 버느라 16살부터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1995년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중학교도 그만뒀다. 스무살 초반까지 그의 집은 신문사 지국이었다.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올해엔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도전할 계획이다. “늦었지만 열심히 준비해 대학에 가면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30에서는 31일 밤 11시부터 1일 새벽 1시까지 경계근무를 선 독도경비대 주일용(21) 수경이 새해를 처음 맞았다. 눌러쓴 철모 아래로 파고드는 칼바람과 바위를 때리는 우람한 파도 소리가 졸음을 깨운다. 전역을 다섯 달 앞둔 주 수경은 요즘 틈만 나면 체력단련장에서 달리기를 한다. 반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 여자친구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독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전역한 뒤에도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입대한 그는 전역한 뒤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빌었다.
새해 첫 열차는 김원준(48) 기관사가 몰았다. 1일 새벽 3시55분 광주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다. 새벽 2시25분 광주역 한쪽에 자리잡은 승무사업소에 들어가 “1422 열차 출무 인사하겠습니다”라고 신고하자, 이원희(54) 지도운용과장이 운행 여건과 날씨 사정을 설명한다.
차량사업소에는 1422 동력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윤활유·냉각수·바퀴를 확인하고, 제동장치 공기통에서 수분을 빼낸다. 1.5평 남짓한 운전석에 올라 승객을 태울 객차 7량을 동력차 뒤에 붙인다. “안전운행 하기를 …!” 지난 19년 동안 40만㎞를 달린 기관사 김씨가 짧게 새해 기원을 올린다. 자동차의 가속기에 해당하는 ‘가감관’을 1단으로 올리자 132t 기관차가 철길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24시팀 기동취재반 ohora@hani.co.kr
한국방송 기술감독 이은상씨.
한겨레신문 배달원 남궁훈씨.
독도경비대 수경 주일용씨.
무궁화호 기관사 김원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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