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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녀들은 왜 ’주먹질’을 배우나?

등록 2007-02-06 14:23수정 2007-02-06 16:06

통합타이틀 세계챔프 김주희씨.
통합타이틀 세계챔프 김주희씨.
[하니뭐하니]
다이어트 하러 왔다가 복싱·이종격투기 선수로
사각의 링 여성편견 깨기…‘쓕슉~’ 이건 입소리가 아니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전세계적으로 4천만부 넘게 팔린 까닭은, 그만큼 뚜렷한 남녀차에 대한 공감이 컸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이른바 ‘남녀 역전’ 또는 ‘성역할 맞바꾸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다소곳함’이 최고의 미덕이던 한국 여성들은 사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거침없이 개성과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는 반면, ‘고루함’의 상징이던 한국 남성들은 권위의 신화를 벗고 부드러운 외모 가꾸기에 열심이다. ‘주먹 쓰는 여자들’과 ‘예뻐지려는 남자들’을 통해 그 단면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원시시대부터 ‘싸움질’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모든 영역에 걸쳐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진 21세기에도 스포츠 가운데 특히 격투기는 여성들이 오르지 못할 산처럼 보였다. 1898년 제1회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었던 레슬링은 2004년에서야 여성들의 참여를 허용했다. 레슬링의 먼 ‘친척뻘’인 유도는 1994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여성종목이 추가됐다. 복싱처럼 프로의 영역에는 엄연한 여성챔피언이 존재함에도 여전히 아마추어에서는 여성들의 진출을 외면하는 스포츠도 있다.

이종격투기 챔피언 임수정씨.
이종격투기 챔피언 임수정씨.
하지만 이런 편견과 장벽과는 무관하게 여성들의 격투기 바람은 날로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권투체육관 ‘스타복싱’의 홍석표 실장은 “개관한 지 1년 남짓 됐는데 회원의 30% 정도가 여성으로 초등학생부터 의사 등 전문직 직장여성, 중년의 주부까지 매우 다양하다”며 “남성들의 관심이 시들한 것과 좋은 대비를 보인다”고 말했다. 한 때 아시아를 넘어 세계 챔피언 무대를 휘어잡았던 한국의 남성 권투선수들이 “배가 고파서” 시작한 ‘헝그리 복서’들이었던 반면, 요즘 여성들은 “살을 빼기 위해서”나 “스트레스를 풀고자” 취미로 입문하는 것도 뚜렷한 차이다.

■ 왜 주먹질을 배우나 = 이런 편견을 딛고 살벌한 사각의 링 위에 선 여성 선수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최근엔 다이어트 욕구가 가장 흔하다. 무에타이로 시작해 현재 이종격투기 ‘네오파이트’의 초대 여성 챔피언인 임수정(22)씨는 “다이어트하려고 우연히 들렀다가” 체육관 지도자의 권유로 프로선수의 길을 가고 있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었던 여성 프로레슬러 이수정(23)씨는 “화려한 의상과 힘이 넘치는 동작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선구자’ 격인 이들에겐 사람들의 관심보다도 개척자로서의 어려움이 더 크다. 스파링 상대가 없어 대회를 앞두고도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함은 물론, 남성 위주의 종목에서 오는 여러 편견들과도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영화 <1번가의 기적>의 하지원씨.
영화 <1번가의 기적>의 하지원씨.
■ ‘하지원’ 따라하기? = 복싱 등 격투기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을 유발한 촉매는 역시 미디어다. 전지현·이영애 등 날씬한 톱스타들이 상업광고에서 권투 글러브를 낀 주먹을 흔들기 시작하자 격투기에 대한 편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 주인공의 과격한 액션 장면들이 늘어난 것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동시에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배우 하지원(28)이다. 그가 <문화방송> 드라마 ‘다모’(茶母)에서 연기한 채옥은 완벽한 ‘액션’을 구사하는 여성 무사의 표본을 보여주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채옥을 통해 여성의 운동이 단순한 취미생활에 그치지 않고, 실제 직업이나 생계수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보여준 셈이다. 하지원은 최근 개봉 예정인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 동양 챔피언을 꿈꾸는 여성복서로 등장해 다시 한번 여성 격투가의 이미지를 ‘뛰울’ 예정이다.

■ “내 자신과의 싸움일 뿐” = 여성 격투가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아직은 기존의 편견들이 건재함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성의 상업화’라는 비판에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그 비판의 잣대를 당사자들에게 들이대는 건 무의미하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지금 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격투기를 선택한 그들의 공통된 이유는 오직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쉽지 않은 길을 택한 그들에게 색안경을 들이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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