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3% 퇴출제 객관적인 잣대가 절실하다
대부분 ‘정서적 업무평가’ 하위직들 “줄서기 조장”
‘무능 공무원 퇴출제’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대구·울산에서 시작해 서울·부산·경기 등 전국의 광역·기초단체가 너도나도 동참을 하면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과 통일부 등 중앙 행정기관과 금융기관에서도 퇴출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가장 먼저 퇴출제를 도입한 대구시는 ‘무능한’ 과장(서기관) 2명과 사무관 5명을 골라내 이 중 사무관 2명에게 시내버스 승강장과 도로시설물을 점검하는 현장근무를 시켰다. 국장들이 부서내 사무관급 20여명 가운데 무능하다고 판단되는 2∼3명을 1차로 골라냈다. 이들 공무원 20여명 가운데 대부분은 세 차례 국장들의 협의에서 보직을 받고 구제됐으나, 끝내 자리를 찾지 못한 사무관들은 퇴출 대상자로 결정돼 현장근무를 맡았다. 대구시는 3월 인사에서 이들 사무관 2명을 동장 등 현업에 복귀시키고, 새로운 퇴출 대상자로 사무관 7명을 선정해 현장근무에 투입했다.
이 ‘충격 효과’는 커서, 결재서류가 늘어나고, 업무시간 중에 자리를 뜨는 직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나 구조조정 때마다 퇴출 대상이 돼온 중하위 공무원들의 반발은 크다. 공무원 단체들도 “하위직 공무원의 눈치보기와 줄서기를 조장할 뿐”이라며 퇴출제 전면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조원해 대구시 총무인력과장은 “10명이 넘는 국장들이 협의를 통해 퇴출 대상자를 결정해 비교적 공평했다”고 말했으나, 납득할 만한 구체적인 잣대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3% 퇴출제’로 전국적인 관심을 끈 서울시도 객관적인 기준 없이 ‘궁여지책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지난 15~21일 직장인 891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퇴출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1.6%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가 4기로 넘어가면서 주민들을 상대로 한 서비스는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공무원=철밥통’ 이미지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다.
3년 전 건설회사에 있다가 중앙정부 공무원이 된 김아무개(36·7급)씨는 “공무원 사회가 업무보다는 고시 선후배, 학연·지연, 줄서기 등 인간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걸 보고 너무 당황했다”며 “일을 많이 할 경우 감사에서 지적만 받게 돼 무사안일·보신주의로 흐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공직이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여서 싹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객관성을 가진 외부기관을 통해 업무분석을 하고 업적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무원 퇴출제가 지난해 민선 4기 단체장 출범 이후 ‘기강 잡기 차원’에서 나온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으려면 ‘일한 만큼 대접하고 또 벌도 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이 관건으로 보인다. 퇴출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는 인력을 재교육해 적소를 찾아주는 작업이어야 한다.
문명재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우리나라 근무평가가 정서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게 걸림돌”이라며 “객관 평가가 이뤄지고 이것이 인사와 성과급 등에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구대 홍덕률 교수(사회학과)는 “퇴출 대상자를 결정하는 심사 과정에 공무원 노조 등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며 “일하는 공직 풍토를 만들기 위해 머리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대구/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대구/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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