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서해안의 어민 대표들과 이종구(왼쪽) 수협중앙회 회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중공업을 방문해 박영헌(오른쪽) 삼성중공업 부사장에게 사과 등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유조선과 충돌한 크레인과 예인선 삼성중공업 소속
누리꾼·시민사회단체·언론·정치권 등 삼성 비판 동참
누리꾼·시민사회단체·언론·정치권 등 삼성 비판 동참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를 입은 60대 어민이 10일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이후 삼성중공업과 삼성그룹을 향한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사고 원인을 제공한 삼성 쪽이 전국적으로 모금과 자원봉사활동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렇다 할 사과와 지원대책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주민이 생계 비관으로 자살한 사실은, 잘못 없는 60대 어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 굴 양식업 하던 이영권씨 음독 자살 시도
지난 10일 오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에서 굴 양식장을 하는 이영권(65)씨가 이번 사고로 생계를 잃은 것을 비관해 제초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이씨는 발견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이날 오후 숨졌다. 이씨의 장례는 5일장으로, 오는 14일 ‘서산수협 허베이 스프리트호 유류피해대책위원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충돌한 크레인과 예인선은 삼성물산 소유로, 삼성중공업이 임차해 작업에 사용해 삼성의 과실이 명백한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삼성 쪽은 사건 발생 한달이 지나도록 피해보상은커녕 피해어민에 대한 사과와 위로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해양 오염이 태안을 비롯 전라·제주 지역까지 확산되면서 서해안 어민들의 피해가 커져 시민과 환경단체 등의 비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어민 자살사건이 발생해 ‘삼성 책임론’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환경연합은 7일 삼성 본관 앞에서 태안 기름유출사고에 대해 삼성그룹의 사과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삼성그룹의 공개사과를 촉구한 바 있다.
특히 이씨가 음독 자살한 10일은 서해안 기름유출 피해와 관련해 이종구 수협중앙회장을 비롯한 어민 대표들이 삼성중공업을 항의방문한 날인데다 타르 덩어리가 전라도 지역을 넘어 제주도 지방까지 흘러간 것으로 확인된 날이기도 하다.
■ 누리꾼, “삼성 불매운동” 제안도
이런 상황에서 이씨의 죽음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적극적으로 삼성 비판에 가세했다. 삼성 쪽이 어민 대표들이 요구한 ‘위로와 사과, 피해보상’ 대책 마련에 대해서도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한 것도 비난을 더욱 키웠다.
10일부터 12일까지 ‘태안 어민 피해 비관 음독자살’ 관련 기사들에는 삼성의 행태를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cjhoon1992’는 “삼성이 직접적으로 대처를 하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사죄를 하는 것도 아닌, 입장 표명도 안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방관해 60대 어민을 죽였다”며 “바다의 생물까지 죽이고 있으니, 이건 살인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인다리’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또 한번 삼성이라는 공룡이 국민을 상대로 깡패짓을 한다”며 “삼성중공업이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이라는 희대의 악행을 저지르고도 사과 한마디, 보상에 관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언론 단속과 정부 단속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spherero’는 “어민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삼성을 심판해야 한다”고 했고, ‘inganity’는 “삼성 로고가 붙은 제품은 이유 불문하고 구입하지 말자”며 불매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해 녹색연합이 만든 “삼성은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하라!”는 ‘삼성중공업 태안 기름유출 사과 요구 ‘텔 미’ 패러디 영상’도 인터넷에서 카페와 블로그 등에 퍼날라지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 민노당 “삼성 방제작업과 보상 생태계 피해 책임져라” 촉구
정치권과 언론도 비판에 동참했다. 민주노동당은 11일 논평을 내어 “예인선인 삼성중공업의 과실은 명백해 보이며, 삼성의 법적 책임은 일견 명확하다. 이번 사건의 오염 제공자인 삼성은 방제작업뿐 아니라 피해보상에도 책임이 있다”며 “삼성과 현대 등 사고 책임의 기업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고의 책임을 명확히 가리는 것은 물론 방제작업과 주민 보상, 그리고 막대한 생태계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겨레>는 11일치 신문 12면에서 삼성중공업을 항의방문한 서해안 어민 대표들의 주장을 상세히 다뤘고, <국민일보>는 ‘사과 없는 삼성중공업’이란 제목의 기자 칼럼을 통해 “‘형식적 사과보다 피해 복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삼성중공업 쪽의 이런 태도가 어민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도 뉴스에서 삼성 쪽의 과실 책임과 소극적 사과에 대한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에스비에스>는 12일 밤 방송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삼성중공업과 유조선사인 현대정유 쪽의 중과실 여부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예정이다.
■ 삼성 “각종 절차 마무리된 뒤 책임질 부분 감당” 사과 미뤄
한편, 삼성중공업쪽은 “정확한 사고원인과 피해액이 집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사과와 대책 발표가 졸속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어 각종 절차가 마무리된 뒤 책임질 부분을 감당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이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어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위로, 서해안 앞바다 오염이라는 ‘대재앙 참사’에 대해 전적으로 자세와 그에 따른 후속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국민들의 비난이 계속될 전망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 발생 한달째인 7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누리꾼들이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앞에서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이 아무런 사과도 없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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