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뛰어넘어 쇠고기·교육·대운하로 확장
전 세대가 공감하며 가족단위 집회 참여도
전 세대가 공감하며 가족단위 집회 참여도
‘촛불’이 진화하고 있다.
10대들이 불붙인 ‘촛불의 물결’은 시간이 흐르면서 30·40대로 확산되고 있다. 집회에서 분출되는 목소리도 ‘쇠고기’를 넘어, ‘0교시’, ‘대운하’, ‘청년 실업’ 등으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생활정치’의 실험이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경기 평택에 사는 강상원(38)씨는 지난 9일 초등학교 5학년 딸의 성화에 못이겨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2005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운동을 이끈 이 지역 출신 활동가다. 강씨는 “미군기지 운동 때도 평택의 일반 시민들은 큰 관심이 없었다”며 “좁은 평택 바닥에서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 반신반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집회장인 평택 시내 ‘제이시’(JC) 공원에는 300개가 넘는 촛불이 밤을 밝혔다. 강씨처럼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집회 분위기도 뜨거웠다. 한국생협연합회 소속 ‘주부 회원’ 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꼬집을 때는 여기저기서 ‘옳소!’라는 구호가 튀어나왔다. 처음 쇠고기로 시작된 이날 집회는 ‘교육’과 ‘대운하’ 등으로 마무리됐다.
서울 청계광장 앞 집회 역시 지난 주말을 정점으로 30·40대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도 참가했다. 지난 9일 청계광장을 찾은 김상철(42·경기 분당)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더는 아이들한테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이 나서 관련 문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촛불집회에 가족을 동반한 중·장년층들이 많이 늘어 이젠 10대 참가자와 30·40대 비율이 반반씩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사회학)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뜨거운 반응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생활정치의 맹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념’에 기반한 게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위협하는 것들에 저항하는 차원의 ‘정치적 참여’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것이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외침은 기존 운동권 구호지만, ‘미친 소는 너나 드세요’는 생활정치의 언어라는 해석이다.
김대훈 한국생협연대 대외협력팀장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집회 참여를 양해하던 소극적 참여에서 벗어나, 같이 손잡고 참여하는 적극적인 참여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학교 급식을 먹어야 하는 10대들은 ‘쇠고기 문제’에 가장 민감할 수 밖에 없는 ‘1차 이해 당사자’다. 그러나 아이들과 자신의 밥상을 걱정하는 학부모들 역시 이런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촛불집회가 전염되는 이런 메커니즘은 ‘하향식’에 익숙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홍 교수는 “‘화장장 이전’ 등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는 이슈들과 달리 쇠고기·대운하 등은 훨씬 더 공감대가 폭넓은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길윤형 황춘화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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