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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앗! 아파요” 즐거운 비명…문신 지우고 희망 새기다

등록 2010-02-05 08:13수정 2010-02-05 11:54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문신제거 전문병원의 박재웅 원장이 선규(가명) 팔에 난 칼자국의 제거 시술을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문신제거 전문병원의 박재웅 원장이 선규(가명) 팔에 난 칼자국의 제거 시술을 하고 있다.
[현장] 청소년 문신제거 지원사업 첫 시술
쉼터협·아름다운 재단, 1년간 10명에 비용 지원
“새출발 위한 계기되길”




병원 레이저실로 들어선 선규(18·가명)는 의사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손등에는 선규의 ‘아픈 과거’를 또렷이 증명하는 검푸른색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방황 속에서 스스로 바늘로 새긴 것이다. ‘9381’이라는 문신의 숫자는 옛적 여자친구 생일이다.

“악!”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겪었던 선규지만, 막상 시술이 시작되자 비명이 절로 나왔다. 피부에 바르는 마취약도 피부 속 색소를 파괴하는 레이저 시술의 아픔을 완전히 없애주진 못했다. 선규는 얼굴 여드름이 걱정이고, 데이트 비용이 부담스러운 여느 10대와 다를 바 없지만, 그의 몸엔 손등의 문신 말고도 양팔에 커다란 칼자국이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선규를 비롯한 청소년 7명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문신제거 전문 ㅋ병원을 찾았다. 아름다운재단과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쉼터)가 문신 때문에 새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위해 시작한 ‘청소년 문신제거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날 첫 시술에서 선규는 문신과 함께 칼자국 제거 시술도 함께 받았다. 지난해 12월부터 1년간 진행되는 이 사업으로 청소년 10명이 문신을 지울 수 있게 됐다. 모두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비싼 비용 때문에 엄두를 못 낸 일이다.

김효정 쉼터 간사는 “선발된 청소년들은 대부분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호기심, 스트레스를 풀 목적 등으로 문신을 새긴 경우”라며 “대체로 어려서 가출했지만 자립하려는 의지가 강한데 문신이 큰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선규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상에서 가장 끔찍했던” 집에서 처음 나왔다. 이혼 뒤 시작된 아버지의 가정폭력 때문이었다. 가출과 귀가를 반복하며 오랫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하자 고등학교 2학년 때인 지난해 5월 선생님과 아버지는 자퇴에 합의했다.

선규의 양팔에 칼자국이 난 건 이즈음이었다. 세상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답답함에 공원에서 혼자 자해를 했다. 그런데 칼자국은 자신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칼자국은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번번이 쫓겨나게 만들었고, 같은해 9월 선규는 홧김에 손등에 문신을 새겼다.

이처럼 계속 추락하는 상황에서 쉼터를 만났다. 쉼터는 선규를 위로했고, 문신제거 사업의 도움도 받게 해줬다. 김희정 아름다운재단 나눔사업팀 팀장은 “문신이 비행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청소년들에게 문신은 상처를 가리고 자신감을 주는 보호색이기도 하다”며 “문신이 무조건 나빠 지운다기보다는, 문신 제거가 희망을 찾아가고 자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아동청소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마련한 ‘소원우체통기금’ 등을 기반으로 1인당 500만원이 넘는 시술 사업에 56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젠 편하게 일할 수 있어 좋아요.” 선규는 당장 이번주부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종일 일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집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돼 마음이 가볍다. 어두웠던 지난날의 흔적을 들킬까 두려워 항상 긴팔을 입었던 선규는 태권도 사범의 꿈을 키우기 위해 조만간 태권도장에도 나갈 생각이다.

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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