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직접증거·진술 신뢰성 부족한데도 기소 밀어붙여
해당검사는 무리한 수사 지탄받아도 승진 되풀이
해당검사는 무리한 수사 지탄받아도 승진 되풀이
MB정권 ‘검찰의 자화상’
“특별수사 대상 내지 목표가 다분히 정치보복적이거나 검찰 중심의 기관 이기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줄 경우에는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받고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한다. … 특별수사를 담당하는 검사 입장에서도 반드시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내지 압박감을 버릴 필요가 있다. …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후보자 등을 상대로 한 수사는 거의 예외 없이 표적·편파 수사 논란이 제기된다.”
야당이나 시민단체에서 내놓은 검찰 개혁안의 한자락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 스스로 수사권의 ‘내재적 한계’를 인식하자며 만든 <검찰수사 실무전범>에 나오는 ‘금언’들이다. 하지만 이번 한명숙(66) 전 국무총리에 대한 일련의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검찰의 모습은, 보수정권 아래에서 3년차로 접어든 검찰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 ‘한건주의’ 팽배 “(한 전 총리 수사는) 어느 순간 컨트롤이 안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특수부 출신의 한 검사는 12일 ‘검찰 책임론’에 대한 항간의 평가를 두고 “수사가 잘못됐다”고 잘라 말했다. “예전에도 뇌물 사건에서 (공여자가) 일관되게 진술을 해도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진술이 계속 바뀐) 이번 사건의 판결을 특별히 다르게 볼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수사-재판 과정에서) 계속해서 스톱 사인이 나왔는데, 의도적이든지 아니면 깨닫지 못했든지 계속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직접적인 물증도 없고 그나마 믿었던 뇌물 공여자의 진술도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는, 검사라면 당연히 재판에 가면 ‘깨진다’는 판단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한 부장급 검사는 이를 두고 “이런 사건은 기소를 한 것만으로도 평가를 받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무죄 판결보다 기소 자체를 성과로 보는 고질적인 ‘한건주의’식 행태가 고삐 풀린 수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한층 심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8년 초 공기업 사장 물갈이에 맞춰 이뤄진 대검 중앙수사부의 공기업 관련 수사는 이후 줄줄이 무죄 선고가 났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중앙지검이 전 정권 인사가 연루된 혐의를 두고 벌인 교원공제회 및 신성해운 사건 수사도 무죄로 귀결됐다. 검찰은 ‘공소 유지’를 가볍게 본 것이 문제라며 이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문화방송> ‘피디(PD) 수첩’ 제작진, 한 전 총리 등에 대한 무죄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횡령 사건을 조사하던 수사팀이 다짜고짜 “돈을 준 전주고 출신 인사를 다 대라고 했다”(곽 전 사장의 법정 증언)는 것도 검찰의 ‘한건주의’를 보여준다.
■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영전 ‘무리한 기소=무죄’ 공식이 되풀이되는 이유를 검찰 안팎에서는 인사에서 찾는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 바깥에서 무리한 수사라고 지탄받은 사건을 맡은 사람들이 그다음 인사에선 좋은 자리로 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판 과정에서 이번처럼 부실이 드러났다면 수사 과정에서 최소한 지휘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 ‘무리하다’ 등의 판단을 해줬어야 한다”며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무엇 때문이겠냐”고 반문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에서는 ‘얘기가 안되면 그만둬야 한다’는 수사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 첫 법무부 장관으로 검찰 인사와 수사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던 김경한 전 장관이 심어놓은 현재의 ‘특별수사 라인업’을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인사에서 대검 중수부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배치된 일부 인사를 두고, 지역 안배나 특별수사 경험 등에 비춰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적재적소 인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누구든 특별수사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중대한 사건을 맞닥뜨리면 실력차가 드러나게 된다”고 말했다. 김남일 노현웅 기자 namfic@hani.co.kr
이명박 정부 첫 법무부 장관으로 검찰 인사와 수사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던 김경한 전 장관이 심어놓은 현재의 ‘특별수사 라인업’을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인사에서 대검 중수부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배치된 일부 인사를 두고, 지역 안배나 특별수사 경험 등에 비춰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적재적소 인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누구든 특별수사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중대한 사건을 맞닥뜨리면 실력차가 드러나게 된다”고 말했다. 김남일 노현웅 기자 namfic@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