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확장형심근병증을 앓고 있는 임형빈(가명·아래)군의 아버지 임석진(가명)씨가 아들의 손을 잡은 채 이야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근로빈곤층과 희망나누기]
빚 3천만원 넘는데 아빠는 일도 못나가
병으로 세상 뜬 아내도 병원비 수천만원
“중환자실서 투병중인 아들이 나의 전부”
빚 3천만원 넘는데 아빠는 일도 못나가
병으로 세상 뜬 아내도 병원비 수천만원
“중환자실서 투병중인 아들이 나의 전부”
확장형심근병증 앓는 형빈이네
“형빈아, 아빠 왔어. 많이 기다렸지?”
지난 14일 오후 3시30분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중환자실. 희귀난치병인 확장형심근병증을 앓고 있는 형빈(5·가명)이가 아빠 목소리를 좇아 눈동자를 움직였다. 마스크를 쓴 형빈이 아빠 임석진(40·가명)씨가 멸균장갑을 낀 손으로 아들의 앙상한 팔을 계속 주물렀다. 아버지와 아들의 눈이 잠시 동안 마주쳤다.
맑은 눈동자와 긴 속눈썹, 형빈이의 눈은 엄마를 쏙 빼닮았다. 임씨는 중학교 시절 아내를 만났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선후배 사이였다. 얼굴이 예쁘고 똑똑했던 아내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대기업에 경리직원으로 취직했다.
임씨는 아내와 2004년 2월 결혼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다세대주택 1층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결혼 즈음 임씨는 초고속인터넷 회원을 모집하는 일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토목회사 관리직과 제빵기능사를 거쳐 2002년부터 새롭게 도전한 일이었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 영업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 달 내내 일해도 경비를 빼면 남는 돈이 없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아내의 수입으로 월세를 냈다.
결혼 3개월 뒤 아내가 임신을 했다. 2004년 11월 임신 6개월이던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아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미 머릿속 종양이 7~8㎝ 크기로 자라 있었다. 수술과 방사능 치료가 이어졌고, 아이는 32주 만에 제왕절개로 낳아야 했다. 그렇게 형빈이는 1.44㎏ 미숙아로 태어났다.
2008년 봄 아내의 뇌종양이 재발했다. 한 달에 1000만원이 드는 신약 치료까지 받는 동안 아내는 하루 뒤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갑작스런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면서 임씨 가족의 경제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임씨는 아이를 돌보고 아내 병수발을 하며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다. 일당 5만원짜리 일도 한 달에 보름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임씨는 2008년 12월24일을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로 기억한다. 그날 임씨와 아내, 형빈이 셋이서 송년파티를 했다. 집에서 함께 박수를 치고 웃었다. 2009년 들어 아내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고, 얼마 뒤 치매 증세로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게 됐다. 아내는 그해 5월3일 눈을 감았다.
지난해 12월24일, 미숙아로 태어나 건강하지 못했던 형빈이의 심장이 갑자기 멈췄다. “아빠, 살려줘!” 형빈이는 장기에 피가 돌지 않아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20분간의 심폐소생술 끝에 멈췄던 심장을 되살렸다. 확장형심근병증은 심장의 수축력이 약해 체내에 산소와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병이다.
이후 형빈이는 인공심폐기를 달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상태는 더 악화되기만 했다. 콩팥이 기능을 잃어 투석도 시작했다. 확장형심근병증의 유일한 희망은 심장이식수술이지만, 형빈이처럼 어린 아이의 심장은 기증자가 극히 드물었다.
지난달 5일, 기적적으로 기증자가 나타났다. 병원은 “한시가 급하다”며 바로 수술을 했다. 형빈이는 현재 새 심장을 받아들이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몸무게는 12㎏을 밑돌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는 “당시 이식수술을 안 했다면 매우 위험했을 것”이라며 “형빈이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고 뇌손상도 우려되지만, 희망을 갖고 회복 여부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위급한 수술은 했지만 임씨는 아직까지 병원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형빈이가 지난해 12월 입원한 뒤 나온 병원비는 1억1100만원으로, 이 가운데 의료보험과 어린이 희귀병 지원액 등을 제외하고 임씨가 내야 할 돈은 36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임씨는 그동안의 병원비와 생활비 때문에 30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형빈이 할아버지(69)가 병원비를 보태겠다며 주차관리 일에 나섰지만 월급은 100만원도 안 된다.
그래도 임씨는 “이젠 형빈이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 “형빈이가 건강해지면 퇴원해 박수치며 정말 재밌게 살 겁니다. 형빈이가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어요.”
14일 형빈이는 심장이 멎었다가 다시 뛴 뒤 처음으로 물리치료를 받으며 제 힘으로 박수를 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5일 오후 형빈이가 이식받은 심장에 천공(구멍)이 발견되는 응급상황이 발생했고, 형빈이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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