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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평화 잃은 4년…강정마을은 지금 폭풍전야

등록 2011-07-26 20:22수정 2011-07-27 20:36

[한겨레in] 제주 강정마을의 분노
정부 해군기지 밀어 붙여
주민들 찬반싸움 갈기갈기
버티던 땅 절반은 강제수용
제주도 서귀포시 남쪽 해안의 한가운데 강정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은어가 거슬러 오르는 강정천이 있다. 섬 전체에 물이 귀한데, 강정마을에는 사철 ‘할망물’(용천수)이 솟는다. 마을 남쪽에는 800여m에 걸쳐 한덩이를 이룬 ‘구럼비 바위’(용암단괴)가 있다.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맹꽁이가 바위틈에서 논다. 앞바다엔 천연기념물 연산호가 군락을 이룬다. 연산호가 주단처럼 깔린 강정 앞바다에 여름이 오면 돌고래가 꼬리로 파도를 친다.

강정마을에는 1930여명의 사람도 있다. 18살 이상 성인은 1400여명인데, 주민등록만 남기고 육지로 떠난 사람을 빼면 1050여명이다. 2007년 8월, 강정마을 주민들은 마을의례회관에서 투표를 했다. 725명이 참석했다. 찬성 36표, 무효 9표, 반대 680표가 나왔다. “투표 안 한 사람 가운데 찬성자들이 많긴 했지요.” 강동균(55) 강정마을회장이 말했다. 투표 불참자 300여명 모두 찬성표로 쳐도 반대자가 70%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일을 주민 대다수가 반대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에서 26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미군기지 전문가인 데이비드 바인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 교수(오른쪽)가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 해소와 평화를 기원하는 100배 명상기도를 하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에서 26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미군기지 전문가인 데이비드 바인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 교수(오른쪽)가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 해소와 평화를 기원하는 100배 명상기도를 하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7년 6월,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지역으로 선정한 국방부는 주민 투표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공사는 끈질기게 강행됐다. 지난 4년 동안 마을은 격동했다. 농사짓던 땅이 국방부 땅으로 변했다. 감귤밭 자리에 잡초가 자랐다. 구럼비 바위 일대는 농성장이 됐다. 올여름은 4년여 격동의 꼭짓점이다. 24일부터 300여명의 전경과 사복경찰이 마을 곳곳에 진입했다.

“이제 싸움이 시작됐수다.” 25일 오후,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경수(가명·60)씨가 말했다. 경찰이 곧 농성 현장을 진압할 것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쫙 번졌다. 김씨는 아들에게 전화했다. 25일부터 제주도 모든 경찰이 ‘비상대기’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의 아들은 제주도 어느 경찰서의 형사다. 제주도청 앞으로 시위 나가면 아들이 현장에 나타나곤 했다. 서로 모른 체했다. “집에서나 아들이지, 그럴 때는 아들 아니야.”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파국을 예감하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돌을 쌓아 세운 깃발이 25일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돌을 쌓아 세운 깃발이 25일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찬성파는 이 슈퍼, 반대파는 저 슈퍼…해군기지가 원수지


25일 아침부터 주민들은 ‘24시간 감시체제’에 들어갔다. 원래 오후 6시까지만 공사 현장을 지켰는데, 이날부터 낮밤 구분 없이 번을 짜서 버티기로 했다. 마을 여자들은 쇠사슬로 서로를 묶었다. 공사 부지의 복판이자 농성장의 복판인 구럼비 바위에 이르는 좁은 농로가 있다. 사태의 중심에 이르는 유일한 길에 쇠사슬로 서로를 묶은 10여명 아줌마들이 드러누웠다. 25일 밤, 바다 위에 달이 뜨자 아줌마들은 오이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한잔씩 했다. “마늘 농사 지어 3000만~4000만원씩 벌던 부촌이 해군기지 때문에 생지옥이 됐다”고 이순희(가명·58)씨는 쇠사슬을 몸에 걸치고 말했다.

이미 주민 전체가 법률의 사슬에 꽁꽁 묶여 있다. 7월 들어 주민들은 소환장, 출석요구서, 소장을 잇따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주민 72명과 강정마을회를 상대로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법원 출두 통지서를 받은 70여명 가운데는 90대 할머니, 유치원 교사, 시청 공무원도 포함돼 있다. “군사시설승인 무효 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마을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뽑아 통지서를 보낸 것 같다. 그 가운데는 시위에 한번도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강동균 마을회장이 말했다. 건설사는 공사 방해를 이유로 주민 14명에게 2억89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 숫자의 의미를 주민들은 좀체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주민들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벌금으로 낸 돈은 모두 5000여만원이다. 마을회비로 충당했는데, “마을 재정이 바닥나고 있다”고 마을회 어느 관계자가 말했다. 그 밖에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중이거나 재판을 받은 주민은 50여명, 같은 혐의로 경찰의 소환장을 받은 주민은 30여명이다. “마을에 전과자가 계속 늘어난다”고 강 회장은 말했다. 국가의 법률 앞에서 주민들은 내내 지기만 했다.

주민들 잘 어울려 살았던 마을
이젠 만나면 째려보고 말 안해
의견 다른 가족들과도 등돌려

대치의 긴장은 돌담을 끼고 도는 골목마다 겹겹을 이룬다. 구럼비 바위 주변에 20여개 농성 천막이 있다. 해군은 3m 높이의 담벽으로 48만4000㎡(매립예정지 20만㎡ 포함)의 공사부지를 에워쌌다. 거대한 성을 이룬 해군 담벽을 따라 주민들은 공사 감시용 텐트를 쳤다. 감시용 텐트로 향하는 길목에는 경찰이 버티고 서서 오가는 사람을 지켜본다. 경찰이 있는 길목마다 주민들은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돈다. 주민들이 다니는 도로마다 경찰차가 다시 순찰을 돈다.

공사장을 향해 부릅뜬 눈은 공사장 바깥에서 땅바닥을 향한다. 주민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예전엔 경조사가 있으면 모두 찾아가 어울렸는데, 이제는 집 밖에 나오지 않고, 나와도 서로 째려봐. 나도 사람들 보기 싫고, 말하기 싫고….” 익명을 요구한 60대 주민은 “사는 게 지옥 같다”고 말했다. 마을의 일상은 편을 나눠 이뤄진다. 반대파 주민은 근처 ㄱ사우나, 찬성파 주민은 조금 떨어진 ㄴ사우나를 간다. 마을 사거리에 마주한 두 가게가 있는데, 찬성파는 ㄱ슈퍼, 반대파는 ㄴ마트만 간다.

찬성파 ㄱ슈퍼 주인은 기자를 내쳤다. “국가가 알아서 하는 일인데 개인 의견 내세워 갈등이 커지는 게 싫다”고 했다. 반대파 ㄴ마트 주인도 기자를 내쳤다. “날도 덥고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민 강희웅(47)씨는 다섯살 위 형과 완전히 말을 끊었다. “찬성파에 앞장서는 형과 갈등이 심했는데, 6개월 전부터는 서로 말도 않고 지낸다”고 말했다. 마을 부회장 조경철(42)씨는 찬성파인 매형과 갈라섰다. 서로 말을 섞지 않은 지 4년 됐다. 박길수(가명·42)씨가 더듬는 기억 속에서 4년 전의 모습은 다르다. “처음에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게 맞지 않아요?’ 하면 ‘에이, 아니지’ 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이젠 가족도 원수가 됐어요. 부모는 자식에게 ‘옆집 아이와 놀지 말라’고 하는 지경이니… 잘 살던 동네가 쑥대밭이 됐어요.”

기지 유치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지역개발을 기대한다. 김철중(가명·68)씨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조건으로 기지가 들어오는 게 낫다. 기지가 들어오면 인구도 늘어나고 여러 시설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기지 유치에 찬성하는 60대의 조미려(가명)씨는 “보상금 받고 다 결정됐는데 이제 와서 반대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 옆 강정천에서 평통사 회원들이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외치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지난 5월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 옆 강정천에서 평통사 회원들이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외치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의지를 상징하기 위해 녹슨 철판을 뚫어 함정 모양으로 만든 설치작품 너머로 강정마을 앞바다가 보인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의지를 상징하기 위해 녹슨 철판을 뚫어 함정 모양으로 만든 설치작품 너머로 강정마을 앞바다가 보인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정부는 법의 사슬로 주민압박
소환·손배소송 남발하더니
반대농성장 오늘내일 진압 채비

찬성파 주민 가운데는 해녀가 많다. 강정마을에 앞서 해군기지 후보지로 떠올랐던 제주 화순·위미리 등에서는 지역 해녀들이 적극 반대했다. 반면 강정마을의 해녀들은 처음부터 적극 찬성했다. 어느 마을 주민은 “당국이 강정마을의 해녀들부터 가장 먼저 만나 보상금으로 회유하고 찬성 여론을 조성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녀들은 1인당 5000만~7000만원씩 보상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민 가운데는 반대파가 많다. 공사부지 면적의 절반은 군 당국의 ‘협의매수’에 응해 땅을 팔았고, 절반은 끝까지 버티다 강제수용을 당했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협의매수’에 응한 사람 가운데 마을 주민은 서너명 정도고 나머지는 모두 외지인”이라고 말했다. 강정마을은 토질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며 일조량이 많다. “보상받는다 해도 근처에 농사지을 땅도 없고, 다른 곳에서 농사지어도 강정만큼 좋은 수확이 없다”고 강 회장은 설명했다. 당국은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농민들에게 평당 20만~70만원 정도씩 보상비를 책정하여 공탁한 뒤, 이를 빨리 찾아가지 않으면 양도세를 더 내야 한다고 통보했다. “실거래가의 50~70% 수준으로 보상하면서 그마저도 안 찾아가면 세금 매기겠다고 협박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상이냐”고 강 회장은 물었다.

찬반 구분 없이 주민들은 맥을 놓고 있다. 2009년 9월, 지역 언론사가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상담에 응한 주민의 75.5%가 적대감·우울·불안·강박증에 시달리고, 43.9%는 자살충동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동을 실행에 옮기는 주민도 있다. 강철호(가명·47)씨는 한달 전 농약을 마셨다. 공사 반대 농성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술을 한잔했다. 집 마당에 들어서자 페트병에 담긴 ‘줌머’라는 농약이 눈에 들어왔다. 곧장 들이켠 농약은 덩어리가 져 있었다. 아들이 급히 강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위세척을 하여 겨우 살았다. 강씨는 “아직도 속이 느글거린다”고 말했다. 주민 강철우(가명·40)씨는 “원래 화를 내지 않는 성격에 술도 못했는데 4년 전부터 매일 한두잔씩 먹기 시작해 이젠 한병을 그냥 마신다”고 말했다. 조경철(42)씨는 “예전엔 하루 세끼를 챙겨 먹었지만 이젠 한두끼 먹다 만다”고 말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
무슨일 벌어질지…이미 파탄”
속끓이며 산 4년 ‘사는게 지옥’

찬반으로 나뉘어 서로 말 섞지 않고 혼자 속끓이며 화병 걸려 살아온 지난 4년여의 결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 대다수는 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지 유치에 호의적인 주민도 마찬가지다. 밀감 하우스에서 만난 어느 60대 주민은 “나는 ‘찬성파’”라고 스스로 말했다. 그가 망치로 곡괭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정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언론이 보도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해. 이미 파탄이 났어.”

공사장 주변 텐트에서 밤을 지새운 강정마을 주민들은 26일 낮, 구럼비 바위 근처 공동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며칠 전 강정 앞바다에 몰려왔던 돌고래 떼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제주/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곽영신 민보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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