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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빠도 할머니도 양육포기…홀로 우는 장애아기

등록 2013-12-02 20:49수정 2013-12-02 23:01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지난달 28일 오전 자원봉사자가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하는 아이와 입을 쑥 내밀어 뽀뽀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지난달 28일 오전 자원봉사자가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하는 아이와 입을 쑥 내밀어 뽀뽀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베이비박스, 버려지는 아기들
태어난 지 6개월 된 하늘이(가명)에겐 ‘경막’이 없다. 경막은 뇌와 척수를 보호하는 막이다. 신경이 경막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손상된 탓에 하반신 장애와 배변 장애를 앓고 있다. 신생아 17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병인 ‘척수수막류’란 병이다. 지난 5월 태어난 이후 여러차례 수술을 받았다. 뇌 주위로 물이 차 머리가 과도하게 붓는 뇌수종(수두증)도 앓고 있어 머릿속에 관을 넣고 물을 빼내기도 했다.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어서 치료비는 상상할 수도 없다. 병원에서는 “다리와 발목이 변형됐고, 정신지체도 올 우려가 크다”고 했다.

어린 생명에게 닥친 ‘천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일상이 깨지면서 가정은 찢어졌다. 엄마는 하늘이를 낳자마자 집을 나갔다. 그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다는 데 자책하다, 경제적 부담까지 겹치면서 산후우울증에 시달렸다. 30대 중반인 하늘이 아빠는 하루하루를 술로 보냈다. 직장마저 그만뒀다.

친할머니가 하늘이를 맡았지만, 예순이 넘은 할머니는 치매를 앓는 80대 시어머니까지 돌봐야 했다. 할머니는 하늘이를 안고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아들이 기형아를 낳았습니다. 이 청천벽력 같은 일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억울합니다. 제 한몸도 감당하기 힘든데 평생 장애 손자까지 키울 수 없습니다.” 지난 7월20일의 일이다.

하늘이는 태어난 지 두달 만에 버려졌고, 이틀 뒤 관악구청을 통해 서울시 어린이병원으로 옮겨졌다. 어린이병원에는 소아청소년과·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치과·영상의학과밖에 없어서, 중증장애를 앓는 아이들은 민간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다. 하늘이는 지금도 이곳에 5개월째 홀로 입원해 있다.

장애아를 낳은 어른들은 억울해하며 자책하는 일이 많다. 장애아를 키우면서 겪어야 하는 정서적·경제적 어려움 탓에 아이와 이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애 영유아 보육·교육비 추가지원 가장 시급”

초록이(가명)도 그렇게 혼자가 됐다. 태어난 지 한달 만인 지난 10월3일 새벽 4시10분께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 초록이는 다운증후군이었다. 30대 후반의 초록이 엄마는 “내가 왜 이런 아이를 낳아야 하냐”며 비통해했다. 주변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커 보였다.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이가 장애란 걸 알면서도 낳았어요. 내 아이니까. ‘낳으면 다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저와 아이를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심지어 아이 아빠도 아이를 안 보려고 해요. 이런 아이를 낳은 게 제 책임이라는 거예요.”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호소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려면 당장 아이의 치료나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뿐 아니라 아이가 자란 뒤에도 지속적으로 들어갈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나 남편이나 가난해요. 조금씩 벌어서 생활하고 있는데, 아이까지 장애가 있으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올해 들어 10월 말까지 이곳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 214명 가운데 장애를 가진 아이는 18명(8.4%)이다. 지난해 1년간 버려진 장애아동보다 10명이나 늘었다. 4살 이하 아동 중 장애아 비율이 0.26%(2010년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비장애아동에 견줘 장애아동의 유기 비율이 대단히 높은 셈이다. 특히 중증 장애아들은 부모뿐 아니라 시설에서도 반기지 않는다. 필요한 치료를 시설에서 바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치료비와 아이를 돌보기 위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통상 유기아동들은 일시보호시설인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거쳐 장기보호시설로 옮겨진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장애시설로 옮겨지는데, 그나마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다. 하늘이처럼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병원에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 관계자는 “치료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아이는 시설에서 받기를 꺼리기 때문에 장기간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어린이병원에는 하늘이처럼 치료가 필요한 유기아동 20명이 입원해 있다.

유기아동들은 장기보호시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가정위탁이나 입양이 되기도 하지만, 장애아들은 입양도 잘 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의 ‘연도별 입양 현황’을 보면, 지난해 입양된 장애아동 200명 가운데 국내로 입양된 아동은 26%(52명)에 그쳤다. 장애아동의 국내입양 비율은 2009년 27%에서 이듬해 18.7%로 떨어진 뒤 2011년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장애아동들은 대부분 국외로 입양되고 있는 처지다. 비장애아동은 다르다. 지난해 입양된 비장애아동 1680명 가운데 국내로 입양된 아동은 63.8%(1073명)였다.

전문가들은 장애아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미흡한 지원체계가 장애아동 유기·기피 현상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최영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장애아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낮아 모든 부담을 부모들에게 지우는 경향이 크다. 부모들이 장애아를 키우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가정이나 시설에서 아이를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8월20일부터 9월27일까지 중앙장애아동지원센터가 전국 18살 미만의 장애아동을 둔 부모 14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1.5%가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장애아동 양육이나 특수교육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성장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장애아동 양육을 위해 응답자의 49.0%가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상시적인 차별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9.1%가 자녀 양육 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국가나 지방정부의 지원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애아동의 보육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3.9%가 ‘장애 영유아 보육비 및 교육비 추가지원’을, 20.2%가 ‘장애 영아 보육·교육기관 확충’을 꼽았다.

김경미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장애아동을 키울 때는 비장애아동을 키울 때보다 1.5배 이상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장애아동에 대한 양육·교육비 지원을 확대하지 않고, 장애아와 부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장애아동 유기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경욱 박수지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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