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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양육할 마음 생기게 ‘초기 미혼모 보육지원’ 필요

등록 2013-12-09 21:45수정 2013-12-10 08:23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1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 열린 ‘나눔학교’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손을 본떠 만든 석고 작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1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 열린 ‘나눔학교’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손을 본떠 만든 석고 작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베이비박스, 버려지는 아기들] ④ 미혼모 양육 지원 어떻게
최소 1주일이상 이용 가능한
익명성 보장되는 쉼터 마련
충분한 상담·양육지원 해줘야

20대 미혼모인 안수민(가명)씨는 지난 9월 아이를 버렸다. 아이를 낳고 한달 동안 홀로 키우다 결국 포기했다. 부모 등 주위에 출산 사실을 알리지 못해 도움을 청할 수 없었고,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를 맡아주는 보육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아이에게 우유를 잔뜩 먹이고 아이를 하루 종일 방치한 뒤 퇴근한 뒤에야 아이를 다시 돌보는 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달이 지난 뒤 그는 “아이에게 더는 못할 짓을 할 수 없다”며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아이를 버리는 대다수는 안씨와 같은 미혼모들이다. 전국 유기아동의 30% 이상이 몰리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아이와 함께 남겨진 쪽지 등을 보면 대부분의 사연이 그렇다. 아동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에 맡겨진 아이들도 3분의 1가량은 미혼모의 아이들이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베이비박스’를 없앨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까닭이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미혼모들은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 자체를 가장 두려워한다. 사회적 편견 탓이다. 편견은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생계 위협으로 다가온다. 8살 아들을 키우는 최형숙(45) 민들레회 사무국장은 방송을 통해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생계를 꾸려가던 미용실 문을 닫았다. 아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싸워 눈자위에 멍이 들어 온 날도 있었다. “미혼모 가정에 대한 차별은 여전해요. 취업할 때도 아이와 엄마의 성씨가 같으면 꼬치꼬치 캐묻죠. 불이익 당할까봐 ‘아이 아빠가 죽었다’고 거짓말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미혼모 함아연(30)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애란원에서 백일 된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다.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죄는 아니지 않냐”고 되물은 함씨는 가족과 주위에 미혼모임을 밝히고 출산했고 애란원에서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미혼모 함아연(30)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애란원에서 백일 된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다.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죄는 아니지 않냐”고 되물은 함씨는 가족과 주위에 미혼모임을 밝히고 출산했고 애란원에서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미혼모 지원금 월 7만원으론 분유·기저귀도 못 사

시간제 돌봄서비스도 제한적
하루 2시간 쓰기 어려워

“지자체에 맡긴 유기아동시설
국가에서 맡아야” 목소리
독일은 집·보육시설 이용권 지원

하루아침에 편견이 사라질 순 없어도 정부 지원이 늘어나 육아를 포기하는 미혼모가 줄어든다면 점차 미혼모들이 양지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은 생각하고 있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차별에 대한 두려움과 지원 미비, 정보 부족은 미혼모들이 출생신고를 꺼리게 하는 이유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차별과 경제적 문제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충분하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출산 초기 단계에서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들을 아동 유기가 아닌 양육으로 유도하기 위해 최소한 법적 입양숙려 기간인 1주일간 이용할 수 있는 ‘익명의 일시 보육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영희 충북대 교수(아동복지학)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살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쉼터가 필요하다. 그 공간에서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숙려도 하고 충분한 상담도 해야 한다. 공적 기관이 나서면 양육을 포기하더라도 이후 부모의 기록을 남겨둘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입양특례법상 의무인 출생신고를 꺼려 아이를 버리게 되는 문제는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 해결하자는 대안이 주목받는다. 가족관계증명서 사용을 본인의 신청 외에는 엄격히 금지하는 쪽으로 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현행 가족관계등록제도에는 혼외 자녀나 전혼(이전 결혼) 자녀의 기록을 빼고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일부’ 증명 제도가 있으나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혼외 자녀나 전혼 자녀의 기록까지 모두 포함돼 나오는 ‘전부’ 증명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전부 증명서는 본인 이외에도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존비속이 위임장 없이도 발급받을 수 있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유기아동 관리 체계가 아이를 키우기는 어렵고 버리기는 쉽도록 돼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위기가정 지원이 아니라 가정이 붕괴된 뒤 시설 지원 위주로 정책을 편다는 지적이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현재 정부는 아동보호시설 등 대안보육 쪽에 더 지원을 많이 한다. 부모가 아이를 시설에 맡기려 할 때도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담해 직접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시설에 아동을 맡긴 부모들에게 면접권을 보장하고 재정상태 파악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 아동을 원래 가정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용기를 내어 아이를 키우려는 미혼모들은 무엇보다 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여성가족부는 현재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2인 가구 기준 한달 126만6500원) 이하인 성인 미혼모에게 아동이 만 12살이 될 때까지 월 7만원, 최저생계비 150%(2인 가구 기준 한달 146만1347원) 이하인 청소년 미혼모에게 월 15만원의 양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기저귀 등 자녀 양육에 필요한 물품 구입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미혼모자 시설과 일반모자 시설 정원을 다 합쳐도 2000가구 안팎이다. 한해 출산하는 미혼모가 6000~1만명으로 추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어림없는 수치다. 여성가족부에서 제공하는 시간제 돌봄 서비스는 연간 480시간으로 한정돼 있다. 하루에 2시간도 사용하기 어렵다. 한부모가정에 우선순위가 있지만 시간당 5500원의 유료 서비스로, 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4인 가구 기준 474만원) 이하인 가정에만 차등적으로 보육비를 보조한다.

김혜영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교수는 지난 10월 ‘미혼모 지위개선을 위한 현황발굴연구 포럼’에서 “젊은 미혼모들은 최저생계비 130%는 넘지만 비정규직의 장시간 노동을 요하는 직종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최저생계비 기준은 미혼모로 하여금 직장을 포기하고 수급자로 남을지, 근로빈곤계층으로 편입할지 고민하게 해 자립 의지를 약화시킨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는 유기아동 관련 사업을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동보호 체계의 지역별 편차 때문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지자체장의 관심 정도에 따라 급식비마저 차이가 날 정도다. 선거권이 없는 아동들은 지방 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십상이다. 국가가 나서 아동복지의 필요 최소한도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은 1993년부터 국가가 나서 6살 아래의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혼모 등 한부모 가족에게는 집과 아동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 미혼모에게는 보육시설 우선 이용권을 준다. 스웨덴 역시 미혼모 가정에 대해 일반가정에 지급하는 출산급여, 부모보험, 자녀수당 외에도 독신모 수당, 육아수당, 아파트 보조금 등을 추가로 지급한다. 미혼모가 일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취업장려금을 지급하고 탁아서비스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청소년 미혼모의 학업 중단도 문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 보고서를 보면, 자녀를 양육하는 청소년 한부모 중 학업을 지속하는 경우는 검정고시를 포함해 30%에 그쳤다. 교육부는 청소년 미혼모들도 학교 체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방침은 가지고 있지만, ‘출산휴가제’ 등 구체적 대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교육부 지정 학생미혼모위탁교육시설은 전국에 18곳뿐이고 청소년 미혼모를 위한 아동양육시설이 설치된 일반학교는 없다. 보고서는 “미국·대만·영국처럼 청소년 한부모의 학습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임신·출산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내외 시설 구비, 교내 상담 등 구체적인 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

김효진 김경욱 방준호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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