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의해 간첩으로 지목을 받았으나,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유우성씨가 2013년 12월6일 오후 항소심 재판이 열리는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 유우성 사건, 검찰 문서 조작 의혹
▶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수사 당국이 증거를 조작해 재판부에 제출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던 과거의 기억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알려졌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항소심에서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유우성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심층취재를 통해 사건의 내용을 깊이 추적해봤습니다.
지난 2월 검찰은 이른바 ‘화교남매 간첩’을 발표하며 서울시 공무원으로 활동하던 유우성(33)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무죄 판결했다.(‘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도 불림. 관련 기사 <한겨레> 9월7일치 14면) 유씨의 여동생이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오빠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간첩’이라고 한 진술을 재판 과정에서 스스로 뒤집은 것이 큰 원인이었다. 유씨의 여동생은 국정원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진술을 했고, ‘남한에서 오빠와 편히 살게 해주겠다’는 국정원의 회유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씨가 지난해 1월22~23일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사진도 실제로는 중국에서 찍은 것으로 확인되는 등 사실관계가 틀린 검찰 공소장 내용이 유씨 변호인단의 중국 현지조사 과정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오류 많은 중국 기록지를 완벽하게 수정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 국정원과 검찰은 과연 증거를 제대로 수집해 간첩죄 기소를 하는 것인가.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는 없는 것인가. 간첩으로 몰린 탈북자들에게 변호인 선임권은 제대로 주어지고 있는 것인가.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장하나 민주당 의원 등이 일부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지만 아직 국정원은 아무런 답이 없다. 상황 변화라고는 유우성씨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뿐이다.
검찰은 지금도 유씨를 간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최성남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이범균 재판장)가 무죄 판결한 직후인 8월26일 항소해 현재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윤성원 재판장)에서 관련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이 편 항소의 주요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검찰은 ‘국정원이 유씨의 동생을 남한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해서 무고한 오빠를 간첩이라고 주장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유우성씨는 진짜 간첩이고, 유씨의 동생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백했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또 유씨 동생의 진술 내용이 오락가락한 점에 대해서는 원심 재판부가 수사 과정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판부는 유씨 동생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아 그가 국정원 등에서 한 진술을 탄핵해 버렸는데, 검찰은 ‘특정 수사 시점에서 진술한 내용의 사실관계가 이후 변경된다고 하여 신빙성을 통째로 부인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무죄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 기록이 아니라 법정에서 제시되는 증거라는 점에서 검찰의 논리가 억지라는 반론도 있다.
간첩혐의로 기소되었지만
1심에서 무죄받은 유우성씨
검찰은 왜 항소심 재판에
조작 의심되는 출입경기록을
들이대며 무리하는 것일까 검찰은 문제 문서 발급 경위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무고한 사람 간첩을 만들려고
증거 조작했다면 형사적 조치와
검찰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 검찰은 유우성씨 재판 때 사실상 유씨 동생이 국정원에서 한 진술 외에는 이렇다 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은 유씨가 탈북자 명단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그 탈북자 명단엔 남한 사람 비율이 더 많았고, 문제의 명단은 탈북자 대학생 모임의 대표 자격으로 소지하던 장학금 신청서라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낸 항소이유서를 둘러싼 논란이다. 그런데 검찰이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겠다며 최근 재판부에 낸 유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출입국기록)이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기록은 여러 정황을 놓고 보았을 때 조작 가능성이 의심된다. 중국 당국도 위조서류라고 밝혀 문서의 진위 여부조차 의심받고 있다. 6일 오후 3시 서울고등법원 404호 재판정에서는 유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재판 시작과 함께 윤성원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검사 쪽과 변호인 쪽이 팽팽하게 다투고 있습니다. 변호인 쪽은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검사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은 문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검찰이 제출한 기록을 증거로 채택할지 재판부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유씨 변호인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유씨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오간 기록이 담겨 있는 출입경기록은 원래 오류투성이여서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는데, 검찰이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오류 기록을 스스로 수정해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즉, 증거 조작이다. 함경북도 회령시에 거주한 유씨는 중국 국적의 재북 화교였기에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중국을 왕래했다. 이때 북한과 중국을 오간 기록이 출입경기록에 남게 되는데, 이 기록을 보면 유씨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수시로 보름 정도씩 중국을 오갔다. 유씨는 외가 쪽 친척이 중국에 살아 중국 방문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지방정부의 출입국관리소가 관리하는 출입경기록에 오류가 원체 많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에 들어갈 때는 기록이 잘 누락되고 중국으로 나올 때만 제대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기록물 관리 체계를 알 수 없어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지만 중국 정부도 이 때문에 ‘출입경기록은 오류가 있으니 참고자료로만 쓰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날 재판정에서 공개된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에도 서류 말미에 중국어로 ‘주의: 데이터 수집, 전송 등 원인으로 위 출입경기록은 오류 혹 누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 자료는 참고자료로만 제공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국정원은 유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출입경기록을 유씨에게 보여줬다. 2006년 5월23일 오후 2시54분 중국 화룡(허룽)시 삼합 세관(일종의 출입국사무소)에서 북한 회령 세관으로 들어간 뒤 27일 오전 10시24분 다시 중국으로 나온 기록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유씨도 인정하는 기록이다. 유우성씨 “2006년 5월 이후엔 북한 안 가” 유씨는 2004년 3월 탈북자 신고를 한 뒤 남한에서 지내오다 2006년 5월23일 북으로 건너가 가족들을 사흘간 만나고 돌아온 일이 있다. 유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숨져 장례를 치르기 위해 건너간 것이었다. 이것은 이전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이미 조사받고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후에도 유씨가 계속 북한을 드나들며 간첩행위를 해왔다고 주장하는데 유씨는 그 후 한번도 북한에 간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유씨의 출입경기록에는 2006년 5월27일 오전 11시16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오고, 2006년 6월10일 오후 3시17분 다시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기록이 붙어 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기록은 없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기록만 있는 이상한 기록이다. 중국 출입국관리소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류다. 유씨는 최근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으면서 ‘전산 오류’라는 확인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올해 초 유씨를 신문하며 이 오류 상태의 출입경기록을 보여준 바 있다. 유씨는 ‘북한에 들어간 기록은 없고, 북한에서 나온 기록만 있어 출입경기록 자체가 오류’라고 주장했으나 국정원은 ‘두만강 도강 등의 방식으로 몰래 북한에 들어간 뒤 중국으로 나와서 기록에 오류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번에 제출한 출입경기록에는 오류투성이의 기록들이 전부 수정되어 있었다. 2006년 5월23일 북한에 들어가고, 27일 북한에서 나오고, 또 그날 북한으로 들어가서 2006년 6월10일 북한에서 나온 것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검찰이 제출한 기록은 화룡시 공안국 출입관리과에서 올해 9월26일 발급받은 것으로 돼 있었다. 이 기록만 보면 마치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이후에는 북한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해왔던 기존 진술이 거짓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 유씨 쪽이 올해 11월4일 중국 연변 공안국 출입국관리소에서 받아온 출입경기록에는 여전히 오류가 남아 있었다. 검찰 제출 기록에는 검찰이 유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되었다고 주장하는 시점인 2006년 이전의 출입경기록도 수정되어 있다. 유씨의 여권을 보면, 2002년 11월30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2년 12월18일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2003년 9월15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9월30일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기록이 있다. 그런데 출입경기록에는 2002년 12월18일과 2003년 9월30일 북한으로 돌아간 기록이 없다. 역시 이 부분도 중국 당국의 기록 오류인데, 역시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록만 누락되었다. 반면 검찰 제출 기록에는 북한과 중국의 드나듦이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2002년 11월30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9월15일 북한으로 돌아가고, 다시 2003년 12월15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12월29일 북한에 들어간 것으로 출입경기록이 바뀌어 있다. 검찰 주장대로 유씨가 두만강을 도강해 북한에 들어가면서 기록이 누락된 것이라고 해도 2002~2003년에도 유씨가 북한을 그런 방식으로 드나들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유씨는 이때 북한 보위부에 의해 간첩이 되기 전이기 때문에 굳이 몰래 북한을 드나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씨뿐 아니라 유씨 친인척들의 출입경기록에도 비슷한 오류가 반복 기재된 것이 확인된다. 북한 입국기록에 오류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검찰 주장보다는 중국 출입경기록의 일관된 오류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검찰이 9월 화룡시 공안국에서 발급받아 온 출입경기록과 유씨 쪽이 지난달 발급받은 출입경기록의 내용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6일 재판에서 기록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중국 당국이 발급한 서류가 맞다”는 설명만 했다. 한국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를 살펴본 화룡시 공안국 관계자는 유씨 쪽의 확인 요청에 “우리가 발급한 기록이 아니다. 화룡시 공안국은 출입국기록을 발급할 권한도 없다. 위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중국 쪽 “우리 협조 받지 않았다…이상하다” 유씨를 변호하는 김용민 변호사는 “검찰이, 유씨가 중국과 북한을 수시로 드나들며 간첩활동을 한 것으로 몰아가려고 중국 당국이 발급한 출입경기록을 조작해 재판부에 제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발급받은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공식 문서임을 증명하려고 문서 말미에 공증을 받아 왔으나 중국 당국이 발행한 문서라면 공증 과정이 왜 필요한지도 의문일 뿐 아니라 공증 양식도 중화인민공화국 공증법의 절차와 맞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났다. 한국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을 살펴본 화룡시 공증처 관계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공증 양식과 다르다. 찍힌 도장도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의 발급 경위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과 우리 정부가 1998년 체결한 형사사법공조조약을 보면, 우리 수사기관이 형사사건의 증거 수집을 위해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반드시 외교부 장관이 공조요청서를 중국에 보내도록 돼 있다. 검찰은 5일 재판부에 낸 의견서를 통해 “정식 절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중국 당국의 협조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입증하는 관련 문서도 추가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 주재 중국 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중국 정부의 협조를 받지 않았다.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어떻게 한국 재판부에 제출된 것인지 이상하다”고 밝혔다. 만약 검찰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형사 처벌 대상이다. 황필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는 “검찰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를 조작했다면, 직권남용 무고죄 등의 책임을 묻는 형사적 조처와 검찰 차원의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에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하면서 기존 공소사실을 스스로 뒤집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유우성씨가 두만강을 도강해 몰래 북한에 들어가는 수법을 보였다고 주장해왔지만, 정작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에는 국경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드나든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김용민 변호사는 “출입국 기록도 조작된 것이라 확신하지만, 검찰 스스로 기존 공소장 내용과 모순되는 증거를 제출해 애초 유씨에 대한 수사가 엉터리였음이 더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유우성씨는 이날 재판 뒤 <한겨레>와 만나 심경을 밝혔다. 유씨는 “왜 죄도 없는 사람을 계속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까지 조작해 제출하는지 너무 괴롭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유씨는 고생 끝에 2011년 6월 탈북자 특채로 서울시에 들어가 복지정책과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해왔다. 그가 간첩으로 몰리자 서울시는 지난 3월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유씨는 국정원 수사 과정과 구치소 생활에서 받은 충격으로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유씨에게 입힌 피해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1심에서 무죄받은 유우성씨
검찰은 왜 항소심 재판에
조작 의심되는 출입경기록을
들이대며 무리하는 것일까 검찰은 문제 문서 발급 경위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무고한 사람 간첩을 만들려고
증거 조작했다면 형사적 조치와
검찰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 검찰은 유우성씨 재판 때 사실상 유씨 동생이 국정원에서 한 진술 외에는 이렇다 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은 유씨가 탈북자 명단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그 탈북자 명단엔 남한 사람 비율이 더 많았고, 문제의 명단은 탈북자 대학생 모임의 대표 자격으로 소지하던 장학금 신청서라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낸 항소이유서를 둘러싼 논란이다. 그런데 검찰이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겠다며 최근 재판부에 낸 유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출입국기록)이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기록은 여러 정황을 놓고 보았을 때 조작 가능성이 의심된다. 중국 당국도 위조서류라고 밝혀 문서의 진위 여부조차 의심받고 있다. 6일 오후 3시 서울고등법원 404호 재판정에서는 유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재판 시작과 함께 윤성원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검사 쪽과 변호인 쪽이 팽팽하게 다투고 있습니다. 변호인 쪽은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검사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은 문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검찰이 제출한 기록을 증거로 채택할지 재판부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유씨 변호인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유씨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오간 기록이 담겨 있는 출입경기록은 원래 오류투성이여서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는데, 검찰이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오류 기록을 스스로 수정해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즉, 증거 조작이다. 함경북도 회령시에 거주한 유씨는 중국 국적의 재북 화교였기에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중국을 왕래했다. 이때 북한과 중국을 오간 기록이 출입경기록에 남게 되는데, 이 기록을 보면 유씨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수시로 보름 정도씩 중국을 오갔다. 유씨는 외가 쪽 친척이 중국에 살아 중국 방문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지방정부의 출입국관리소가 관리하는 출입경기록에 오류가 원체 많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에 들어갈 때는 기록이 잘 누락되고 중국으로 나올 때만 제대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기록물 관리 체계를 알 수 없어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지만 중국 정부도 이 때문에 ‘출입경기록은 오류가 있으니 참고자료로만 쓰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날 재판정에서 공개된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에도 서류 말미에 중국어로 ‘주의: 데이터 수집, 전송 등 원인으로 위 출입경기록은 오류 혹 누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 자료는 참고자료로만 제공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국정원은 유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출입경기록을 유씨에게 보여줬다. 2006년 5월23일 오후 2시54분 중국 화룡(허룽)시 삼합 세관(일종의 출입국사무소)에서 북한 회령 세관으로 들어간 뒤 27일 오전 10시24분 다시 중국으로 나온 기록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유씨도 인정하는 기록이다. 유우성씨 “2006년 5월 이후엔 북한 안 가” 유씨는 2004년 3월 탈북자 신고를 한 뒤 남한에서 지내오다 2006년 5월23일 북으로 건너가 가족들을 사흘간 만나고 돌아온 일이 있다. 유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숨져 장례를 치르기 위해 건너간 것이었다. 이것은 이전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이미 조사받고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후에도 유씨가 계속 북한을 드나들며 간첩행위를 해왔다고 주장하는데 유씨는 그 후 한번도 북한에 간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유씨의 출입경기록에는 2006년 5월27일 오전 11시16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오고, 2006년 6월10일 오후 3시17분 다시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기록이 붙어 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기록은 없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기록만 있는 이상한 기록이다. 중국 출입국관리소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류다. 유씨는 최근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으면서 ‘전산 오류’라는 확인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올해 초 유씨를 신문하며 이 오류 상태의 출입경기록을 보여준 바 있다. 유씨는 ‘북한에 들어간 기록은 없고, 북한에서 나온 기록만 있어 출입경기록 자체가 오류’라고 주장했으나 국정원은 ‘두만강 도강 등의 방식으로 몰래 북한에 들어간 뒤 중국으로 나와서 기록에 오류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번에 제출한 출입경기록에는 오류투성이의 기록들이 전부 수정되어 있었다. 2006년 5월23일 북한에 들어가고, 27일 북한에서 나오고, 또 그날 북한으로 들어가서 2006년 6월10일 북한에서 나온 것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검찰이 제출한 기록은 화룡시 공안국 출입관리과에서 올해 9월26일 발급받은 것으로 돼 있었다. 이 기록만 보면 마치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이후에는 북한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해왔던 기존 진술이 거짓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 유씨 쪽이 올해 11월4일 중국 연변 공안국 출입국관리소에서 받아온 출입경기록에는 여전히 오류가 남아 있었다. 검찰 제출 기록에는 검찰이 유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되었다고 주장하는 시점인 2006년 이전의 출입경기록도 수정되어 있다. 유씨의 여권을 보면, 2002년 11월30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2년 12월18일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2003년 9월15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9월30일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기록이 있다. 그런데 출입경기록에는 2002년 12월18일과 2003년 9월30일 북한으로 돌아간 기록이 없다. 역시 이 부분도 중국 당국의 기록 오류인데, 역시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록만 누락되었다. 반면 검찰 제출 기록에는 북한과 중국의 드나듦이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2002년 11월30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9월15일 북한으로 돌아가고, 다시 2003년 12월15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12월29일 북한에 들어간 것으로 출입경기록이 바뀌어 있다. 검찰 주장대로 유씨가 두만강을 도강해 북한에 들어가면서 기록이 누락된 것이라고 해도 2002~2003년에도 유씨가 북한을 그런 방식으로 드나들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유씨는 이때 북한 보위부에 의해 간첩이 되기 전이기 때문에 굳이 몰래 북한을 드나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씨뿐 아니라 유씨 친인척들의 출입경기록에도 비슷한 오류가 반복 기재된 것이 확인된다. 북한 입국기록에 오류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검찰 주장보다는 중국 출입경기록의 일관된 오류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검찰이 9월 화룡시 공안국에서 발급받아 온 출입경기록과 유씨 쪽이 지난달 발급받은 출입경기록의 내용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6일 재판에서 기록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중국 당국이 발급한 서류가 맞다”는 설명만 했다. 한국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를 살펴본 화룡시 공안국 관계자는 유씨 쪽의 확인 요청에 “우리가 발급한 기록이 아니다. 화룡시 공안국은 출입국기록을 발급할 권한도 없다. 위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중국 쪽 “우리 협조 받지 않았다…이상하다” 유씨를 변호하는 김용민 변호사는 “검찰이, 유씨가 중국과 북한을 수시로 드나들며 간첩활동을 한 것으로 몰아가려고 중국 당국이 발급한 출입경기록을 조작해 재판부에 제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발급받은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공식 문서임을 증명하려고 문서 말미에 공증을 받아 왔으나 중국 당국이 발행한 문서라면 공증 과정이 왜 필요한지도 의문일 뿐 아니라 공증 양식도 중화인민공화국 공증법의 절차와 맞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났다. 한국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을 살펴본 화룡시 공증처 관계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공증 양식과 다르다. 찍힌 도장도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의 발급 경위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과 우리 정부가 1998년 체결한 형사사법공조조약을 보면, 우리 수사기관이 형사사건의 증거 수집을 위해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반드시 외교부 장관이 공조요청서를 중국에 보내도록 돼 있다. 검찰은 5일 재판부에 낸 의견서를 통해 “정식 절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중국 당국의 협조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입증하는 관련 문서도 추가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 주재 중국 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중국 정부의 협조를 받지 않았다.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어떻게 한국 재판부에 제출된 것인지 이상하다”고 밝혔다. 만약 검찰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형사 처벌 대상이다. 황필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는 “검찰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를 조작했다면, 직권남용 무고죄 등의 책임을 묻는 형사적 조처와 검찰 차원의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에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하면서 기존 공소사실을 스스로 뒤집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유우성씨가 두만강을 도강해 몰래 북한에 들어가는 수법을 보였다고 주장해왔지만, 정작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에는 국경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드나든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김용민 변호사는 “출입국 기록도 조작된 것이라 확신하지만, 검찰 스스로 기존 공소장 내용과 모순되는 증거를 제출해 애초 유씨에 대한 수사가 엉터리였음이 더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유우성씨는 이날 재판 뒤 <한겨레>와 만나 심경을 밝혔다. 유씨는 “왜 죄도 없는 사람을 계속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까지 조작해 제출하는지 너무 괴롭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유씨는 고생 끝에 2011년 6월 탈북자 특채로 서울시에 들어가 복지정책과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해왔다. 그가 간첩으로 몰리자 서울시는 지난 3월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유씨는 국정원 수사 과정과 구치소 생활에서 받은 충격으로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유씨에게 입힌 피해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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