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7월24일자 정아무개 중앙정보부 요원(주일본 대사관 영사)의 영사증명서. 김대중 전 대통령 내란음모 사건의 증거자료로 이 영사증명서가 제출됐다.
‘한겨레’ 47쪽짜리 문서 입수
“김대중, 해외동포에 투쟁 제의”
출처 없는 정보, 재판 증거자료로
‘김정사씨 간첩 사건’ 때도 쓰여
“김대중, 해외동포에 투쟁 제의”
출처 없는 정보, 재판 증거자료로
‘김정사씨 간첩 사건’ 때도 쓰여
국외 공관에서 일하는 정보기관 직원이 국내로 보낸 서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 등에서 피의자를 옭아매는 수단으로 쓰여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때는 물론 이른바 ‘김정사씨 간첩사건’에서도 일본에서 보낸 ‘영사증명서’가 증거물로 제출됐던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두 사건 당시 주일본 대사관의 영사로 있으면서 영사증명서를 작성했던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요원 정아무개씨는 “본부의 지시에 의해서 한다”고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히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구명 여론이 일어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당시 정씨가 발급한 영사증명서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증거로 사용됐다. 김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은 것은 반국가단체 결성 및 수괴 혐의였다.
<한겨레>가 입수한 47쪽짜리 영사증명서에는 김 전 대통령이 일본 내 재야단체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결성을 주도해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문서에는 “김대중은 북괴의 사주를 받은 배아무개 등에게 해외동포가 총연계해 투쟁하자고 제의해 찬동을 얻어 한민통 일본 본부를 결성하기로 합의했다는 확인된 첩보가 있다”, “북괴 연락부 성명 미상 과장의 말이, 김일성 수령이 한민통에 자금을 얼마든지 지원할 테니 남조선 해방의 전진기지로 확대하고 과감히 투쟁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함을 보아 한민통 자금은 북괴에서 직접 지원된 것으로 볼 수 있음” 등의 내용이 쓰여있다. 출처가 없는 미확인 정보들이 영사증명서에 쓰이면서 재판에서 증거자료로 둔갑한 것이다.
1977년 재일동포 출신으로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김정사씨가 간첩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도 정씨의 영사증명서가 등장한다. 과거사위의 종합보고서(2007년)를 보면, 정씨는 영사증명서의 작성 경위에 대해 “본부(중앙정보부)의 지시에 의해서 한다. 정보기관에서 파견 나갔기 때문에 외무부 영사 업무와는 다르다. 영사라는 타이틀을 빌린 것뿐이다”라고 털어놨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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