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직원들이 11일 오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에 항의하러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을 방문한 국회 국정원개혁특위 민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왼쪽 뒷모습)을 취재하는 기자의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려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보·수사 분리안된 폐해 확인
적법 절차·검증 필요한 수사를
불법 마다않는 정보기관이 담당
돈으로 증거 사고 절도 등 예사
헌재도 “국민 기본권 위협” 지적
적법 절차·검증 필요한 수사를
불법 마다않는 정보기관이 담당
돈으로 증거 사고 절도 등 예사
헌재도 “국민 기본권 위협” 지적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처럼 돈을 주고 증거자료를 위조해 법원에 내는 일은 수사기관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국가정보원이 이런 상식 밖의 행각을 벌인 것은,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증거를 수집해야 할 ‘사법’의 영역을 무시하고, ‘음지’에서 일하며 때로는 불법도 마다않는 정보기관의 비뚤어진 습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가졌을 때의 폐해를 또렷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11일 검찰·국정원 설명을 종합하면, 국정원은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힌 문서 3건을 협력자를 통해 구했다. 공식·정상적 절차를 통해서 발급받지 않았다.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61)씨는 자살을 시도하며 남긴 유서에서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과 수고비”를 국정원에서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이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은 또다른 문서 입수 대가”라고 해명한 점에 비춰보면, 국정원이 협력자한테 돈을 주고 여러 증거자료를 사들였다고 볼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나 검찰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아무리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정보 파트와 분리돼 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정보기관이다 보니 수사를 할 때도 법을 어기는 걸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몇해 전에 국정원 직원이 ‘기술 유출범이 분명하다’며 자료를 갖고 찾아왔는데 호텔방에 몰래 들어가서 훔쳐온 것이었다. 도저히 증거로 제출할 수 없는 자료여서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도 수사와 정보 파트가 분리돼 있지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보기관의 습성이 강해 정보에 따라 수사가 왜곡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번 증거조작 사건에서도 국정원이 입수해 검찰에 건넨 피고인 유우성(34)씨의 중국-북한 입출경기록은 유씨가 합법적으로 북한에 들어갔다는 내용으로, 강을 건너 불법 입북했다는 애초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과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은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항소심 재판부에 낸 뒤 공소장 변경도 하지 않은 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국정원의 수사권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은 헌법재판소에서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조규광 재판관 등 3명은 1994년 정부조직법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정보기관은 밀행적 속성 때문에 국민들에게 기본권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정보기관이 수사권마저 함께 가지면 기본권 침해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구심이 기우가 아니었다는 점은 여러 경험으로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변정수 재판관은 같은 사건에서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를 존치시키려면 업무를 오로지 정보수집에 한정하고 보안업무나 범죄수사권 등을 완전히 배제시켜 권력남용 및 인권침해의 요소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영국·독일·이스라엘 등 주요 국가의 정보기관은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정보수집 활동과 형사소송법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수사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검찰도 범죄정보과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산하에 뒀다가 별도 조직으로 떼어냈다. 국정원은 정보 기능만 갖고 대공수사권을 다른 기관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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