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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2회 ④ 36곳의 검은 그림자

등록 2014-09-12 23:12수정 2014-09-13 13:48

박인근이 구속된 뒤 부랑인을 단속해 수용하던 전국 36개 시설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1987년 충남 연기군에 있는 양지원 원생 김기석(27)씨가 두드려 맞아 숨졌다. 충남도경은 양지원이 개원한 1983년부터 1987년 2월까지 88명이 숨지고 이 가운데 6명이 폭행치사 당했다고 밝혔다. 양지원을 실제 운영하는 이는 대전 대화동 성지원 원장 노재중(47)이었다. 노씨는 박종구(31)씨를 양지원의 ‘바지 원장’(실권 없는 서류상의 원장)으로 앉혀놓았다.

1987년 2월7일, 원장 노재중이 운영하는 대전 대화동 성지원에서 원생 20여명이 강제노역 등을 견디다 못해 탈출했다. 형제복지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 신민당의 인권 조사단 심완구 의원 등 7명과 기자 2명은 현장 검증을 벌이기 위해 2월10일 성지원을 찾았다. 원장 노재중과 술에 취한 원생 20여명이 정문 앞에서 각목을 들고 야당 국회의원과 취재진을 막아섰다.

“내가 책임질 테니 국회의원이고 기자고 뭐고 다 죽어버려.”

원장 노재중이 힘껏 소리치자 원생들은 취재진과 의원들을 때리며 정문 밖으로 밀어냈다. 박인근은 당시 형제복지원에 없었기 때문에 검찰이 진입할 수 있었지만 원장 노재중은 달랐다. 노재중은 야당 의원들이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정문 앞에서 이들을 기다렸다.

뒤늦게 출동한 경찰도 속수무책이었다. 원장 일행은 경찰이 갖고 있던 M16 소총마저 빼앗아버렸다. 야당의 인권 침해 조사는 정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대전시의 부시장과 국장, 구청장 등 관계 공무원도 10여명이나 함께 갔는데도 국회의원과 기자들에게 그럴 정도라면 그곳은 대한민국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방지대라는 이야기인가. (…)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을 직접 목도하고도 딴소리를 하는 관리들도 그렇지만 경찰의 자세도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지못해 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한 경찰의 늑장 출동에다 그 엄청난 소동이 벌어졌는데도 사건 발생 다음날인 11일 오전까지 연행된 사람 한명도 없었다니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사건 당시 현지 경찰이 원생들의 폭행을 만류하자 ‘이렇게 하면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고 항의했다는 원장의 태도는 무엇을 뜻하는가. 경찰이 이런 일에 M16 소총까지 빼앗겨가며 이토록 허약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동아일보> 1987년 2월11일치)

국가는 내무부 훈령 410호로
부랑인의 감금을 합법화했다
88올림픽을 앞둔 1981년부터
공무원이 부랑인 단속에 투입됐다
1987년 내무부 훈령은 폐지됐다

원생 20명이 탈출한 대전 성지원
원장 노재중은 조사나온 의원과
취재진을 각목으로 때리게 했다
법무부 장관도 그를 옹호했다
또다른 박인근이 곳곳에 있었다

박인근의 특수감금 혐의는
끝내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2년6개월만이 선고되었고
출소 후 이름만 바뀐 ‘재육원’의
이사장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신민당 조사단 12명은 2월12일 저녁 7시20분부터 13일 오전 8시20분까지 충남도청 도지사실에서 성지원 운영 실태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김성기 법무장관은 신민당 의원들이 농성을 끝낸 13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민당 조사단 12명이 농성을 벌였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국회의원도 국회의 결의를 통해 국정조사권을 발동할 경우가 아니면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조사를 해야지요. 동의가 없으면 주거침입죄에 해당됩니다. 의원과 보좌관들이 도지사실에서 밤새 바둑을 두며 점거한 행위에 무슨 법적 근거가 있습니까?”

김성기 법무장관은 신민당 의원들을 비난했다. 의원과 취재진을 폭행한 성지원이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충남지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김 장관은 신민당 의원들을 거론하며 “신분의 고하를 불문하고 범법 사실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취재진과 법무장관 김성기의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도지사실 점거를 문제 삼아 국회의원들을 처벌한다면 성지원을 비호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요.

“복지시설들이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지요. 사회 안정을 위해 수용하다 보니 갈등도 생기겠지만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제도적 모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하는 작태를 용인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대전 성지원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벌일 건가요. 노재중 원장은 구속할 방침입니까.

“현재 쌍방이 맞고소를 해서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어요.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특정인을 겨냥해서 누구를 구속하라는 것은 인민재판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구체적으로 수사를 벌여 혐의점이 인정되고 증거가 명백하면 그때 가서 처벌을 할 수 있겠지요. 보고받은 바로는 내무부 소속 수행 공무원들은 전혀 폭행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는데 신민당 국회의원들은 맞았다고 진술을 했더군요. 신민당 의원들이 당초 성지원에서 폭력을 유발한 측면이 있어요. 원생들이 신민당 조사단원들을 50미터가량 밀어낸 지점에서부터는 쌍방간에 폭력이 오고 갔어요.”

성지원을 탈출해 행방을 감추었던 현영호(42), 조덕홍(34)씨는 2월28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 나타났다. “성지원 생활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구타와 폭행이 난무하는 생지옥입니다!” 경찰은 성지원 실태를 폭로하던 두 사람을 잡아갔다. 이들의 폭로는 여기서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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