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더불어 사법부, 그중에서도 최고 권위의 법률 해석·적용 기관이자 민주주의와 기본권 수호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에 대한 기대치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한겨레>는 양승태(66) 대법원장 취임 3돌을 앞두고 대법원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기본적인 사명에 충실한지를 집중 점검해 본다..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3년 동안 대법원의 획일화·보수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한겨레>가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 나온 전원합의체 판결 59건과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전원합의체 판결 95건을 비교·분석해 보니, 소수의견이 크게 줄었다. 판결 내용도 개인의 권리 구제보다 국가의 권한 확대 쪽 비중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9월 취임 뒤 양 대법원장은 대법관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활성화 방침을 세웠다. 과거 이 전 대법원장 시절 연평균 15.8건이던 전원합의체 판결은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연평균 19.7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질적으로는 퇴보했다. 전원합의체 판결문에는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반대(소수)의견’, 다수의견에 동의하더라도 논거를 달리하는 ‘별개의견’, 다수·반대의견의 논거에 동의하지만 추가 의견을 제시하는 ‘보충의견’이 기록되는데, 이들이 동시에 줄었다.
반대의견은 이 전 대법원장 시절 판결 95개 가운데 60개(63.2%)가 나온 반면,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59개 중 32개(54.2%)에 그쳤다. 보충의견과 별개의견은 이 전 대법원장 시절 93개로 거의 모든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1개꼴로 나왔지만,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30개에 불과해 두 차례 판결에 1개꼴이었다. 양 대법원장 취임 뒤 전원합의체 사건은 늘었지만, 심리 과정에서 오가거나 판결문에 기록되는 다양한 목소리는 크게 줄어든 것이다. 반대·별개·보충 의견은 사건의 결론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다양한 관점이 제시돼 하급심의 법리 연구·개발에 밑바탕이 된다. 소수의견이 시간이 지나 다수의견이 되기도 한다.
판결 내용의 보수화 경향도 뚜렷해졌다. 이 전 대법원장 시절 보수적 분위기의 대법원에서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진보적 대법관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사회통념을 넘는 고율이자는 무효 △성전환자 호적정정 허용 △종교사학에서 종교자유 보장 등 소수자 보호와 개인 권리 구제에 적극적인 판결을 남겼다. 반면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전교조 시국선언 유죄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합법 △과거사 손해배상 청구 시효 제한 등 다시 ‘질서’와 공권력을 강조하는 쪽으로 회귀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의 ‘존재감’도 축소됐다. 이 전 대법원장 시절엔 사회적 관심을 끄는 사건이 종종 전원합의체 테이블에 올라 대법관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는데, 양 대법원장 체제에 들어서서는 단순한 법리적 쟁점 정리에 그치는 ‘무색무취한’ 사건이 주를 이뤘다.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 법학자·법률가들은 ‘대법관 구성의 획일화’를 꼽았다. 최고 법원이 변호사·교수·인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경험을 한 인사들로 채워지는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은 법관 출신 일색에 가치관마저 비슷한 이들만 지명되고 있다는 얘기다. 대법원장이나 정권의 색깔에 맞는 이들만 발탁되는 인선 시스템의 문제도 지적된다.
이상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사회학)는 “대법원은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대법원 내부가 상호 견제가 되지 않고 획일화되면 결국 사회도 극단으로 쏠릴 우려가 있다. 대법원을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김선식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