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어느쪽 아냐” 주장하지만
‘상지대 사건’ ‘에버랜드 CB’ 재판 등
기득권자·친기업에 가까운 보수
‘상지대 사건’ ‘에버랜드 CB’ 재판 등
기득권자·친기업에 가까운 보수
‘완고한 보수’, ‘정통 법관.’
양승태 대법원장과 함께 근무해본 판사들이 양 대법원장을 떠올리며 내놓은 대체적인 평가다. 보수 성향이 뚜렷한 전형적 엘리트 법관이라는 얘기다. ‘사법관료의 산실’이라는 법원행정처에서 송무심의관·송무국장·사법정책연구심의관·차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기도 했다.
양 대법원장은 보수적이라는 평가에 대해 “나는 진보와 보수 어느 쪽도 아니다”라며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다짐했다. 하지만 판사 시절 그는 사회적 논란거리가 된 사건들에서 대부분 기득권층에 이익이 되고 보수적 가치를 반영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법관 시절에는 전체 대법관 13명 가운데 가장 오른쪽(보수)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리 사학의 대명사인 ‘상지대 사건’에서 그는 가치관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2007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양승태 당시 대법관은 ‘정부 파견 임시 이사들이 정식 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김문기 전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다수 편에 섰다. 다음과 같은 보충의견까지 붙였다. “학교법인에는 적지 않은, 때로는 막대한 기본재산이 있게 마련인데, 임시 이사가 정식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사학의 운영 주체가 변경되는 것은 그 재산의 귀속 주체에 실질적인 변경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서 재산권 침해의 문제가 야기된다. 국가권력이 파견한 임시 이사에 의해 학교법인의 두뇌에 해당하는 이사회 조직이 전면 개편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국가가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학을 접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의 공공성보다는 비리 교주(김문기 현 상지대 총장)의 재산권을 우선시한 이런 태도에 대해 한 전직 대법관은 “학교의 자산은 김씨 개인 것이 아니라 학교법인의 것이다. (양 대법원장은) 법인격에 대한 기본조차 무시하고 화끈하게 보수 기득권자의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했다.
기업 관련 재판에서는 친기업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을 두고 격론이 오간 끝에 5 대 5로 유무죄가 맞섰는데, 그가 무죄 취지 별개의견을 내면서 이건희 회장 등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성향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한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양 대법원장은 당시 기아자동차, 한보철강, 대한통운 등 줄도산한 기업군을 법정관리했다. 그를 잘 아는 한 법조인은 “당시 국가적 위기 상황을 직접 겪으면서 ‘국가와 기업이 잘돼야 국민과 근로자들도 잘살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힌 것 같다. 실제 양 대법원장은 개인의 권리 구제보다 공동체의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는 성향”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보수적이지만 주변에 이를 강요해 분란을 일으키지는 않는다고 한다. 양 대법원장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전직 대법관은 “수가 높은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건 호락호락하지 않은 강단이 있다”고 평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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