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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관 다양화해야…“시민의견 반영하는 인선 방식 필요”

등록 2014-09-23 20:43수정 2014-09-24 08:21

[심층 리포트] 양승태 3년, 대법원 집중점검
③ 양승태 사법부의 미래는

대법관 대부분 법원 내부 출신
여성·비서울대…‘구색’ 맞췄지만
‘대세 순응’ 판결에 다양화 가치 희미

대법원장과 대통령 뜻 따르는
대법관 인선과정 변화 요구도
미·독·일, 제도화로 다양성 지켜
“끝으로, 여성 법관들에게 당부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전체 법관의 다수가 되고 남성 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 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중략) 헌법기관은 그 구성만으로도 벌써 헌법적 가치와 원칙이 구현되어야 합니다.”

2012년 7월10일 전수안(62)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대법관 구성에서 ‘균형’과 ‘다양성’은 그가 퇴임한 이후 뒷걸음질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여성과 비서울대, 비법관 출신들에게 대법관 문호가 일부 개방됐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대법관 선임에서도 복고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 퇴행하고 있는 대법원 구성 다양성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사법부는 입법·행정부와 달리 주권자의 투표로 구성되지 않는다. ‘민주적 정당성’이 태생적으로 취약하다. 이 때문에라도 다양한 ‘배경’과 사고를 지닌 이들로 대법원을 구성해야 취약한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뒤 이런 기조는 퇴보했다. 그가 임명제청한 대법관 대부분은 법원 내부 출신이다. 교수(양창수)와 검사(안대희) 출신이 있던 자리도 ‘정통법관’들로 대체됐다. 법원 내부에서 실력과 인품을 인정받은 법관들이 대법관으로 발탁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법원장과 가까운 고참 법관 위주로 마치 승진이라도 시키듯 대법원이 채워지는 것은 문제다.

여성(박보영·김소영), 비서울대(박보영·김창석), 향판(김신) 등을 끼워넣어 구색은 맞췄지만, 김신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의 판결 성향은 ‘대세 순응형’이다. ‘주류의 총애를 받는 비주류’가 발탁되는 방식으로 다양화의 가치가 바래고 있는 셈이다. 스펙 대신 법조인으로서 실제 활동 분석에 바탕한 대법관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 정권에서 진보적인 대법관이 임명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한 현직 대법관은 “보수 정권에서 ‘독수리 5형제’ 같은 사람을 대법관 시키겠는가? 보수 정권에서 진보와 어우러진 다양함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대법원에서 활발하게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는 이인복·이상훈 대법관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임명제청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노력과 의지만 있다면 진보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시각을 개진해 대법원을 활성화할 수 있는 이들을 발탁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 제도로 다양화 강제?…외국 사례 보니

근본적으로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뜻이 아닌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대법관 인선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첫발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활성화다.

선임 대법관, 법무부 장관, 대한변협 회장 등으로 꾸려진 추천위에서 추천한 사람 가운데 한명을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임명제청하는데, 통상 추천위에서 논의되는 후보군에는 대법원장의 의중이 실린 이가 포함돼 있다. 추천위의 서류 검증 뒤 별다른 반대가 없으면 준비됐던 후보군들이 대법원장에게 추천된다. 추천위가 대법원장의 자의적 선택을 추인하는 정도의 구실만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도 대법관 지명 때는 이념적 성향이 우선 고려된다. 대통령과 그가 지명한 대법관이 같은 정당 출신인 경우가 80%가 넘을 정도다. 하지만 ‘다양성’ 원칙도 정착돼 있다. 건국 초기엔 지역 갈등을 고려해 각 주 출신 대법관 몫이 인정됐고, 가톨릭과 유대교 등 특정 종교 몫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종·여성을 배려하는 관행만 남아 있다. 1967년 서굿 마셜이 흑인 첫 대법관이 됐고, 1981년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첫 여성 대법관이 된 뒤 3명의 여성 대법관이 추가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첫 히스패닉계 여성 대법관을 탄생시켰다. 현 대법관 9명 가운데 여성은 3명이다. 인종 면에서는 유대계 3명, 앵글로색슨계 2명, 이탈리아계 2명, 흑인과 푸에르토리코계가 각 1명이다. 정파간 대립이 첨예하다 보니 민족과 지역에 대한 정치적 고려 외에도 반대 정파를 설득하기 위한 후보자의 법조 경력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미국이 전통과 관행으로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원칙을 지켜왔다면 독일은 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독일 헌법은 최고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의 재판관 16명을 모두 연방의회에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회가 재판관을 뽑게 되자 변호사, 교수, 의원, 행정부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재판관들이 배출됐다. 최고법원이 정파적으로 구성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8명씩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반드시 3명은 직업 법관을 앉히도록 했다.

일본은 최고재판소 재판관 15명 중에서 10명은 판사, 검사, 변호사 중에서 선발하지만 나머지 5명에게는 반드시 법률가 자격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관례에 따라 출신 분야별로 인원을 할당하고 있다. 판사 출신 6명, 변호사 출신 4명, 검찰관 출신 2명, 행정관, 외교관, 대학교수 출신 각 1명 등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추천위원 수를 늘리고 구성도 다양화해서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기 전에 법원 안에서 판사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며 “대법관에게 반드시 변호사 자격을 요구하는데, 그런 자격요건을 폐지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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