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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금 저한테 뭐라고 하셨어요?” 대법관들 얼굴 붉히며 논쟁 벌이기도

등록 2014-09-21 20:21수정 2014-09-22 15:06

2013년 12월18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이날 선고를 통해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  김명진<한겨레21>기자 <A href="mailto:littleprince@hani.co.kr">littleprince@hani.co.kr</A>
2013년 12월18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이날 선고를 통해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 김명진<한겨레21>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원합의체 회의 어떻게 이뤄지나
“대법관님, 도대체 리걸 마인드가 있긴 한 겁니까?”

최고위 법관 13명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도 이렇게 도발적인 발언이 오간다고 한다. 리걸 마인드(legal mind: 법률적 사고방식)는 법학을 다루는 이들에겐 ‘인간성은 없어도 리걸 마인드는 갖춰야 한다’고 할 만큼 기초적인 요건으로 꼽힌다. “대법관님, 지금 저한테 뭐라고 하셨어요?” 공격을 참지 못한 대법관도 대응에 나선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들인 만큼 판결에 영향을 미칠 쟁점이 아니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음 토론으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법령 해석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대법관들은 판결 내용에 대해선 여간해서 타협하지 않는다고 한다. 점잖고 실력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한 정통 법관 출신 대법관은 취임 뒤 주심을 맡은 첫 전원합의체 사건 심리 첫날 다수의 대법관과 얼굴을 붉히며 논쟁을 한 뒤 이튿날 대법관 전용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다.

‘밀당’(밀고 당기기)은 대법관들도 한다. 대법관 13명이 다수결로 결론을 내는 전원합의체에서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경우 캐스팅보트(가부가 동수일 때의 결정권)를 쥔 대법관은 자신의 의견을 보충의견으로 받아주는 쪽에 붙는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같은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의견을 주심 대법관이 몰래 보충의견에 추가할 때도 있다고 한다. 전원합의가 끝난 뒤 보충의견을 새로 정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전직 대법관은 “5 대 8로 갈리는 사건은 사실 거의 동수로 보면 된다. (항상 다수의견에 서는) 대법원장을 빼면 6 대 6 가부동수에서 한 명이 옮겨 가는 건데 그 한 명이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밀당’은 전원합의체 회부 전부터 이뤄진다. 전원합의체 회부는 주심 대법관의 의지가 결정적인데, 이 과정에도 전략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원합의체에 가져가서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기존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하거나 오히려 후퇴할 우려가 있으면 사건을 소부에서 마무리한다. “혼자 소수의견 내고 또 한번 ‘확인사살’당해서 좋지 않은 결론으로 종전 판결을 확인하게 될까”(전직 대법관)라는 고민을 한다는 얘기다.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올리기 전 주심 대법관과 재판장인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회부의 적절성을 논의할 수도 있다. 대법원장이 평소 식사 자리 등에서 ‘이 정도 사안이면 올릴 만하지 않느냐’고 방향을 잡아줄 수도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로 남기기에 사안의 무게가 가볍거나 뚜렷한 반대의견이 없을 경우에는 다시 사건을 소부로 내려보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는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한 전직 대법관은 “실컷 합의 과정을 거치고도 사안을 전원합의체에서 선고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대법원장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원합의체에 오른 사건이라고 해서 모두 전원합의체 판결문 형태로 결론이 나가는 건 아니다. 절반 정도는 다시 소부 판결문으로 내보낸다. 사안의 무게, 정치적 민감성, 합의 결과 등을 고려한다고 한다. 어떤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데는 주심의 결단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대법관이 어떤 사건을 전원합의 사건으로 올렸는지를 보면 그의 성향을 좀더 정밀하게 추론할 수 있다. <한겨레>가 전원합의체 회부 목록의 공개를 요청하자,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회부 목록은 관리하지 않는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뒤 전원합의체에서 격렬한 토론이 줄어든 것과 관련해 한 전직 대법관은 “요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후다닭’ 캐릭터와 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토론이 서둘러 마무리된다는 뜻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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