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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회변화 밑거름 될 소수 의견·치열한 논쟁 사라졌다

등록 2014-09-21 20:27수정 2014-09-22 15:05

대법원 전원합의실의 자리배치는 이렇다.
대법원 전원합의실의 자리배치는 이렇다.
전원합의체 판결 경향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전원합의체 올릴 사건 발굴하라”
‘양승태 체제’ 들어서는
단순 법리쟁점 그치는 사건 많아
‘사회적 논쟁 꺼리나’ 지적도
“소수의견 존중받도록 해야” 비판
2008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잠입탈출 등) 혐의로 기소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70) 교수의 상고심에서 “한국인이 외국 국적을 얻고 외국에 살다 북한을 방문한 행위는 국가보안법의 탈출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 판결(다수의견)은 11년 전 비슷한 사건에서 소수의견이었다. 1997년 캐나다 국적을 가진 동포 강아무개(65)씨가 북한에 두차례 입국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외국인이라도 제3국에 거주하다 반국가단체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국가보안법의 탈출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때 이용훈·정귀호·지창권·신성택 대법관은 “국가보안법의 ‘탈출’의 의미는 대한민국 통치권이 행사되는 지역에서 이탈해 반국가단체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외국에서 북한에 간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반대(소수)의견을 냈다. 이 반대의견은 당시 판결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후배 대법관들이 이를 채택해 다수의견이 됐다.

언뜻 무의미해 보일 수 있는 소수의 목소리인 반대의견은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밑거름으로 쓰일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사에서 탁월한 논리를 제시하며 많은 반대의견을 남긴 올리버 웬들 홈스(1841~1935) 대법관이 ‘위대한 반대자’로 불리는 이유다.

전원합의체 판결문에는 반대의견을 비롯해 별개의견·보충의견 등 대법관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기록된다. 한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자체가 법률가들에게 깊은 사고의 기회를 주고 법률교과서의 구실도 하기에, 다양한 의견들의 개진과 이를 기록에 남기는 작업은 의미가 크다.

<한겨레>가 양승태 대법원장과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교해 보니, 판결문에 포함된 다양한 목소리들이 줄어들면서 판결문은 뚜렷이 얇아지고 있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반대의견이 나온 비율은 이 전 대법원장 시절(전체 95건) 63.2%에서 양 대법원장(전체 59건) 때 54.2%로 줄었으며, 보충의견과 별개의견이 나온 비율은 96.8%에서 50.8%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만장일치 비율은 이 전 대법원장 시절이 52.6%로 양 대법원장 때 49.2%에 비해 다소 높다. 의견이 갈린 판결만 따로 추려 보면, 판결 한 건당 반대의견을 낸 평균 대법관 수는 이 전 대법원장 때 4명, 양 대법원장 때 2.9명이다. 만장일치 사건을 포함해도 이 전 대법원장 때는 평균 1.9명, 양 대법원장 때 평균 1.5명이 반대의견을 냈다. 5명 이상이 반대의견을 낸 경우는 이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16.8%였는데,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6.8%에 불과했다.

이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만장일치도 많았지만 논쟁이 치열했고, 상대적으로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논쟁이 있어도 ‘적당한 선’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전 대법원장 시절 다뤄진 민감한 소재의 전원합의체 판결로는 ‘<피디(PD)수첩> 정정보도 사건’을 들 수 있다.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광우병 발병 위험이 크다’는 쟁점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보도 내용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한 판결이었다. 이 당시 반대의견은 4개였고 여기에 동조한 대법관 수가 19명에 이른다. 한 대법관이 여러 반대의견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종교 사학에서도 종교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른바 ‘강의석 사건’에서도 3개의 반대의견에 11명이 이름을 올렸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인정한 판결에서도 6명이 반대의견 3개에 이름을 올렸는데, 여기에 다수 보충의견 1개, 반대 보충의견 1개씩 나와 논쟁이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유족 합의 땐 딸이나 차남도 제사 주재 가능 △안기부 엑스(X)파일 보도 유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파업에만 업무방해죄 인정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무죄 사건 등에서도 5명 이상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전원합의체 판결은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사건이다. 박일환·전수안·이인복·이상훈·박보영 대법관이 1·2차 시국선언에 모두 무죄 의견을 냈지만 8 대 5로 유죄로 결론났다. 2차 시국선언의 경우 신영철 대법관이 무죄에 동참해 7 대 6으로 갈렸다.

사회적 관심을 끈 사건 가운데 반대의견이 많이 나온 판결로는 남편 몰래 자녀를 데리고 출국한 베트남 여성이 자녀 국외이송약취 혐의로 기소된 사건(주심 박보영 대법관)이 있다. 대법원은 이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당시 5명(신영철·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이 “상대방과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결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친권행사를 배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전자발찌 부착 여부를 평가할 때 과거 소년보호처분 사례를 전과로 인정하면 안 된다는 판결(주심 전수안 대법관)에서는 4명(안대희·양창수·박병대·김용덕 대법관)이 “소년보호처분도 범죄자의 상습성을 평가하는 자료로 쓰일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양승태 대법원장 때는 전반적으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 비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는 사건이 사회적 논쟁을 이끄는 경우가 별로 없고, 대법관들도 비슷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까?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다루는 경우는 4명의 대법관이 심리하는 소부에서 합의가 안 되거나, 주심이 사건을 검토하다 판례 변경 등을 위한 대법관 전체 토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다. 결국 주심이 자신의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의미가 큰 사건도 묻힐 수밖에 없다. 이 전 대법원장은 재임 때 대법관들에게 “주심이 정해지기 전에도 전원합의체에 올릴 사건들을 발굴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결과 대법관들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양승태 체제’에서는 대법관들이 이런 사건들을 발굴하는 데 소홀하거나 사회적 논쟁을 유도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한 전직 대법관은 “사회적으로 첨예한 쟁점이 되는 사건들에서는 돌출적인 시각과 소수의견이 매우 중요하다. 반대의견으로나마 (사회에) 소수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이들이 좌절하지 않게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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