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신영철
날짜: 2008년 10월 14일 (화) 오전 10:42
제목: 대법원장 업무보고
받는사람: 형사단독판사들
어제 회의에 참석하신 판사님들께만 전해드립니다.
오늘 아침 대법원장님께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가 있어, 야간집회 위헌제청에 관한 말씀도 드렸습니다.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1.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2.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법원이 일사분란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하여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두 가지 메시지였습니다.
구속사건 등에 대하여 더 자세한 말씀도 계셨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참고로 우리법원 항소부에서는 구속사건에 대하여는 선고를 할 예정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저와 상의하여 내린 결정은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 주십시요.
-법원장 드림-
2009년 3월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회원이 국민의 기본권을 우롱한 신영철 대법관를 파면하라며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2일 나온 <한겨레21> 1048호는 그를 ‘문제적 법관’이라고 했습니다. ‘문제적’이란 표현은 좀 모호합니다. 그에겐 문제적이란 수식어보다 ‘탈헌법적’이란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왜 판사들에게 ‘빨리빨리’를 주문했을까
그는 17일 퇴임을 앞둔 신영철 대법관입니다. 신 대법관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일어난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검찰에 의해 기소됐을 때 서울중앙지방법원장에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메일을 판사들에게 보내 압력을 행사한 법원장이었습니다. 압력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 10월9일 야간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재판이 연기되거나 구속된 촛불집회 관련 피고인들이 석방됐습니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이란, 법원에서 재판중인 사건에서 그 사건에 적용될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 문제가 제기되면 법원이 직권으로 혹은 소송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들여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여 줄 것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이 내려지면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해당 사건의 재판은 중단됩니다. 1심과 2심 재판에서 피고인 구속은 최장 6개월까지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구속 기한 6개월을 다 채운 피고인은 재판이 종료되지 않아도 풀어줘야 하는 거지요. 그러니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재판이 연기되면서 구속된 피고인들이 석방되는 일도 생긴 것입니다.
2008년 초여름 밤을 불태웠던 촛불집회에 참가한 피고인들을 대상으로 한 재판에서 ‘야간에 건물 밖에서 하는 집회는 제한하는 법률’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에 어긋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박재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7 단독 판사가 직권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전까지 줄줄이 유죄가 내려지던 촛불집회 참가자 관련 재판에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러자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박 판사를 포함한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법원은 일사분란한 기관이 아니니 현행법에 따라 판결을 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판사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고, “대법원장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법원 헌재 포함 여러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윗분과 동료들을 ‘팔아먹기’도 했습니다.
윗분을 팔고 동료를 끼워팔고
그보다 앞서 촛불사건을 특정한 재판부에 몰아주기 식으로 배당했고, 이에 반발하는 형사단독 판사들을 모아 입단속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압력 행사는 2009년 3월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신영철 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취임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즉시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윤리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신 대법관은 버텼습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엄중 경고’를 하고, 500명의 판사들이 재판권 독립을 침해했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는 버텼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신 대법관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버텼습니다. (
▶관련 기사: ‘촛불 유죄 압력’ 명백한 법관 독립성 침해)
결국 ‘안면 몰수’ 버티기의 아이콘이 된 그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꿋꿋했습니다. (
▶바로가기: [만평 드립] 대법관의 격, 신영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대법관을 향한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되돌아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는 2006년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중요 사건의 배당 문제를 지적한 <한겨레> 기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어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에게 “대법관 후보 물망 기사에 내 이름 하나 못 올려주느냐”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
▶바로가기: 대법관님의 불타는 권력 의지) 대법관 임명 제청을 앞둔 2008년 중반엔 그렇게 달갑지 않게 여기던 <한겨레> 법조팀에 뜬금없이 두 차례나 점심을 사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겨레> 법조팀에 밥과 기사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판사회의에서 500명의 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행동을 재판권 침해로 규정했고,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통해 신 대법관에 대한 사퇴 압력이 절정에 치달을 때쯤이던 2009년 5월23일.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신영철 파문은 자연스레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한겨레 기자에게 “대법관 후보 물망에 올려달라”
그렇게 6년을 버틴 신 대법관이 어느덧 퇴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판사들 힘이 많이 빠졌다.” 한 현직 부장판사가 내놓은 ‘신영철 사태 이후 6년’에 대한 소회입니다. 판사들이 그때 이후 힘이 빠진 건, 신영철 대법관이 판사들의 독립성을 침해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판사들 스스로에 대한 자책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현직 판사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 것은 개인에겐 영광일지 모르나, 사법부로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사람을 대법관으로 두었던 우리 국민들도 그렇고 판사들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안됐다.”
후배 판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 대법관은 퇴임을 앞두고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6년 전 ‘재판개입’ 사태가 터졌을 때 신 대법관을 옹호하면서 그를 비판한 판사들을 “자기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법원 내부 일을 외부에 폭로한 일부 판사”로 비난했습니다. <한겨레>도 퇴임을 앞둔 신 대법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신 대법관은 6년 전 <한겨레>에 “내가 얘기하면 제대로 써주기는 하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신속처리 ‘촛불재판’, 지금도 소신엔 변함없어”. 지난 3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 제목을 보고 놀랐습니다. 6년 전 그가 내놓았던 해명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된 상태였지만 그 이유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의 재판을 일률적으로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90% 이상인 단순 참가자의 경우 처벌 수위가 벌금 30만원 정도인데 피고인들 입장에서도 빨리 재판을 마무리 짓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명백하게 존재하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이라는 사법 시스템 내부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입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됐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재판을 정지하는 건 법에도 맞지 않다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재판 정지 또는 연기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소신’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에 당시 기사를 첨부하는 것으로 반박 논리를 대신하겠습니다. 특히 마치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재판 진행을 재촉했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부족한 궤변인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 ‘신 대법관 “재판정지는 위법”…형법원칙상 재판연기가 관행’
<조선일보>와 만났기 때문인지, 그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판사들에게 재판 진행을 재촉하겠다는 뜻일 겁니다. 그가 그토록 즐겨 사용하는 이메일을 다시 보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정말로 그때 그 이메일들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당시 그가 형사단독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 원문 역시 그대로 공개합니다.
보낸사람: 신영철
날짜: 2008년 7월 15일 (화) 오전 8:56
제목: 형사단독판사 간담회
받는사람: 형사단독판사들
<대내외비>, <친전>
안녕하십니까. 법원장입니다.
형사단독판사님들의 간담회(양형연구 위원회)를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개최하고자 하오니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2008. 7. 15(화). 09:20
장소: 동관4층 소회의실(법원장실 옆)
참석범위: 법원장, 형사단독판사(영장전담, 수석부 배석 제외)
취지: 1. 양형의 통일적 운영
2. 형사재판 운영에 관한 제문제
요망사항: 법원장으로서 ‘소통과 배려’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씀드리는 기회이고 향후 형사재판 운영에 관한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릴 기회를 가지고자 하오니, 모임에서 논의된 사항이나 모임 그 자체도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내적으로도 비밀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법원장으로서도 모임 현장에서 언론의 자유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요청입니다.
보낸사람: 신영철
날짜: 2008년 11월 6일 (목) 오후 3:58
제목: 야간집회관련
받는사람: 형사단독판사들
<대내외비>,<친전>
형사단독판사님께
확신하기는 어려우나 야간집회 위헌여부의 심사는 12월5일 평의에 부쳐져, 연말 전 선고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2월이 되면 형사단독재판부의 큰 변동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모든 부담되는 사건들은 후임자에 넘겨주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또 우리 법원의 항소부도 위헌 여부 등에 관한 여러 고려를 할 것이기 때문에, 구속사건이든 불구속 사건이든 그 사건에 적당한 절차에 따라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
또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법원장 드림-
보낸사람: 신영철
날짜: 2008년 11월 24일 (월) 오후 3:52
제목: 야간집회위헌사건에 대하여
받는사람: 형사단독판사들
<대내외비> <친전>
존경하는 우리법원 형사단독 판사님들께
야간집회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을 2009년 2월에 공개변론을 한 후에 결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변론하지 않고 연말 전에 끝내는 것을 강력히 희망한 바 있으나, 결정이 미뤄지게 되어 저 자신 실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위헌여부의 결정을 반영하여 2월 재판부 변경 전에 어려운 사건을 모두 끝내고 후임 재판부에 인계하려던 저와 판사님들의 계획이 상당부분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피고인이 그 조문의 위헌 여부를 다투지 않고, 결과가 신병과도 관계없다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십사고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
-법원장 드림-
이제는 기억이 나시겠지요
재판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법원 내부의 ‘문화’는 독특합니다. 후배 검사들을 “○○○ 검사”라고 부르거나 반말도 즐겨 쓰는 검찰과 달리 법원에선 법원장도 초임판사들에게 “○○○ 판사님”이라고 부릅니다. 사건을 배당하는 권한만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에게 있을 뿐, 사건에 대해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든 조직입니다. 당연히 ‘윗분’과 특정 재판에 대한 상의를 하는 일도 없습니다. 법원장이 함께 일하는 판사들을 알고 싶다며 자기소개서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
▶바로가기: 이진성 헌재재판관 후보, 보수편향·판사통제 의혹)
중요한 판결이 나왔을 때 기자들이 판사들에게서 판결에 대한 ‘코멘트’를 듣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다른 판사들의 판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입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성남지원 판사는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신 대법관이 보낸 이메일의 ‘심각성’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