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이 지난 6일 저녁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를 나와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신영철 대법관 ‘이메일’ 해명 궤변 논란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한 것…” 발언도 무리
재판결과 받아보지 못하는건 국민 아니라 검찰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한 것…” 발언도 무리
재판결과 받아보지 못하는건 국민 아니라 검찰
신영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보낸 ‘압력성 이메일’과 관련해 ‘법대로 하라는 것이었을 뿐’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상당수 판사들은 이런 주장은 현행법 및 법원의 관행에도 맞지 않는, 근거가 빈약한 변명일 뿐이라고 말한다.
신 대법관은 지난 6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단독판사들이 위법한 재판을 하는 것을 바로잡으려고 법대로 하라는 말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위헌제청 없이 재판을 정지하는 것은 위법한 재판 진행”이라며 “원장이 그걸 보고 가만 내버려둘 수 없어 ‘법대로 하자’는 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법 42조는 “위헌법률 심판이 제청되면 해당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헌제청을 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뚜렷한 규정이 없다. 따라서 특정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제청이 되면 해당 조항이 적용된 사건을 맡은 다른 재판부들은 자체 판단으로 사건 처리를 헌재 결정 때까지 유보할 수도, 재판을 계속 진행할 수도 있다.
실제 서울지법 남부지원이 2002년 1월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이경수씨가 병역법 조항을 문제삼아 낸 위헌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자, 당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들의 재판이 잇따라 중단됐다. 이는 형사사건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종합부동산세법에 대해 위헌제청이 이뤄지자, 세대별 합산 부과가 쟁점인 사건 수십건의 진행을 중단했다. 반면, 종부세법 자체가 위헌임을 전제로 한 재판은 계속 진행했다.
이런 관행이 보편적인 이유는 ‘의심이 가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형법의 대원칙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을 보지 않고 선고를 했으나 관련 법률이 위헌 결정이 나면 결국 재심을 해야 한다. 따라서 피고인이나 원고가 재판 진행을 요구하거나 위헌성을 다투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재판을 그대로 진행한다. 그런데도 신 대법관이 자신의 주문을 재판 개입이 아니라 법원장의 사법행정 차원의 권고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억지 논리라는 게 판사들의 설명이다.
촛불사건의 경우에도 박재영 전 판사의 위헌제청 이후 서울중앙지법에서 13건은 선고가 이뤄졌고 30건은 재판 진행과 선고가 정지·연기됐다. 신 대법관의 논리대로라면 재판을 중단했던 많은 판사들이 위법행위를 한 셈이 된다. 신 대법관은 또 촛불사건 재판 중단이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촛불사건의 경우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오면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것이고, 원하는 재판 결과를 받아보지 못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검찰 쪽이므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 판사는 “나도 우리 재판부에 있는 간통 사건을 헌재 결정 나올 때까지 선고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말이 옳을 수도 있으니까 결과를 지켜보고 판단하려던 것”이라며 “대부분의 판사들은 이런 경우 재판을 중단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박현철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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