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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현병’ 환자 동행기…알아채기 쉽지 않게, 조금 다를 뿐인

등록 2016-06-03 19:34수정 2016-06-05 10:06

조현병 환자인 홍석철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상근활동가가 1일 자신이 졸업한 경기도 안양 대림대학교 안에서 캠퍼스를 바라보고 섰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홍씨는 전문적 지식을 익혀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사진 박기용 기자
조현병 환자인 홍석철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상근활동가가 1일 자신이 졸업한 경기도 안양 대림대학교 안에서 캠퍼스를 바라보고 섰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홍씨는 전문적 지식을 익혀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사진 박기용 기자
[토요판] 르포
▶ 지난달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경찰은 피의자 김아무개씨가 조현병 환자라고 발표했습니다. 경찰은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했습니다. 대책으로 내놓은 것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강화’였습니다.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가 또다른 배설구를 만난 듯합니다. 치안과 보건이 사회적 분노의 방향을 바꿔 그들을 예비 범죄자로 내모는 격입니다. 당사자들과 장애인 단체들은 “정신장애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며 반발합니다. 그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창살이 뾰족하게 돋고 있는 이때, 조현증을 안고 살아가는 이와 하루를 동행했습니다.

그와 첫 인사를 나누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조현병 환자들은 노출을 꺼렸다. ‘강남역 살인’ 이후 더 그랬다. 이들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통제하기 어렵다는 인상은 사건 이후 한층 심해졌다. 정신질환자 범죄율이 비질환자 범죄율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긴 어려웠다. 이들이 정말 불안하고 위태로운 존재인 걸까. 경찰이 살인의 책임을 정신질환으로 돌리고 혐오 범죄의 성격을 두고 사회적 논쟁이 일 때도 정작 그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를 거세당한 그들은 느닷없이 ‘위험 집단’으로 부각‘당했다’.

조현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지난달 31일 홍석철(25)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그의 발음은 조금 어눌했지만 음색은 밝았다. 인천에 살면서 서울 구로로 출퇴근한다고 했다. 탄력근무제여서 오후 출근을 하되, 다음날 오전 장애인복지관에서 언어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동행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홍씨는 흔쾌했다. 복지관 쪽에 취재 양해를 대신 구해주기도 했다. 그는 처음 상의한 일정을 바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곳을 다녀보자며 역제안을 해왔다. 그렇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강남역 살인’ 이후 노출 꺼리는
마음이 조율되지 않는 이들
강제입원이 트라우마 남겨
경찰 발표 뒤 불안해졌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죠”

증상 나타나면 본인도 모른다
첫 특징은 잠을 못 잔다는 것
“정신도 우리 신체의 일부”
초기 치료와 주변 관심이 중요
잘못된 인식이 병 악화시킨다

16살 겨울, 병이 시작되다

1일 오전 약속 시간이 임박해 인천 남구장애인종합복지관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물 밖에서 휴대전화기를 들고 있는 그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도착해 이야기 나눌 장소를 잡아놨다고 했다. “잘생겼네요.” 뜻하지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외모가 깔끔했다. 조현병 환자는 어딘지 모르게 외모 관리가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조현병의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이다. 뇌 속 신경계가 제대로 ‘조율’되지 않아 기능에 문제가 생긴 질환을 은유한 병명이다. 발병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학계는 뇌 속 신경세포들 간 정보교환을 돕는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물질이 너무 많거나 적은 탓으로 보기도 한다. 2011년 이전까지는 ‘정신분열증’이라 불렸다. 이름이 주는 편견과 낙인으로 환자들이 병을 드러내길 꺼리고 치료에 어려움이 있자 조현병으로 이름을 바꿨다. 홍씨는 조현병을 앓는 당사자이자, 이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이기도 했다. 그의 직장은 ‘한국정신장애연대’, 영어 약자로 ‘카미’(KAMI)라 한다. 지난해 9월부터 상근으로 일하고 있다.

홍씨의 첫 발병은 16살 때,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이었다. 처음엔 우울증이 왔다. 우울감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홍씨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라며 ‘우울증’과 ‘대인관계 회피증’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후 홍씨는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갖은 ‘척’을 했다. 책 읽는 척, 글 쓰는 척, 잠자는 척.

“너무 잠만 자는 걸로 보일 수 있으니 책을 읽었고, 그러다 또 애들이 잘난 척한다고 할까봐 화장실로 가서 숨었어요. 내가 어딘가에서 놀고 있겠지, 왕따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그러면서. 하교 때도 전봇대 뒤에 숨어 있다가 애들이 다 집에 가고 나면 가고 그랬어요.” 홍씨는 결국 등교를 거부하고 병원을 전전했다. 만 19살 때인 2010년 그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2급 정신장애(현재는 3급)였다. 약의 부작용으로 발음도 더 어눌해졌다. “긴장하거나 당황하면 말을 더듬고 문맥이 엉켜요. 단어를 생각해내느라 말이 끊기고요.” ‘혀가 좀 짧다’ 싶은 발음이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 이날은 긴장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복지관과의 약속 시간이 됐다. 언어치료를 위한 등록을 했다. 복지사가 홍씨의 신상을 자세히 물었다. 읽고 쓰는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홍씨가 “혹시 제가 지적장애라 생각하시는 거냐”고 되물었다. 복지사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그렇다”고 했다. 발음이 어눌한 홍씨는 간혹 이런 오해를 받는다고 했다. 정신장애는 지적장애(정신지체)와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구분하지 못한다. 홍씨가 이곳에서 언어치료를 받으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신장애인 인권 활동가로서 이따금 인권 교육이나 강의를 하러 가는데, 발음이 나쁘면 무시받는다”고 했다.

강제입원이 두렵다

점심시간이 가까웠다. 복지관을 나와 인근의 식당으로 옮겼다. 음식을 기다리던 중 홍씨에게 누군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날 서울 여의도에서 정신장애인 인권을 다루는 집담회가 열리는데 경찰의 ‘행정입원’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가기로 했단다. 이들은 경찰이 강남역 사건 뒤 대책으로 거론한 행정입원을 ‘강제입원’으로 받아들인다.

정신보건법을 전면개정한 정신건강증진법이 지난달 19일 국회를 통과했다. 행정입원은 이 법안에 반영된 내용이다. 정신질환으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대해 경찰이 병원의 보호를 요청하는 제도다. 원래 보호의무자 2명과 전문의 동의가 있으면 강제입원이 가능한데, 요청 주체에 경찰이 추가됐다. 경찰은 정신질환자 판단용 체크리스트와 입원요청 기준 등 매뉴얼을 만들겠다 했지만,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씨에게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정신장애인들의 분위기를 물었다. “같은 환자여도 사람마다 상황이 달라요. (자신의 병을 주변에 알리는) 커밍아웃을 한 경우와 아닌 경우가 다르고. 특히 강제입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은 많이 힘들어해요.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거죠.” 홍씨도 강제입원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6번의 입원 중 2번만 자의였다. 자신의 뜻에 따라 입원했을 땐 2주, 1주 만에 퇴원했지만 강제입원 땐 6개월(입원 한도)을 다 채우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조현병을 앓는 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다. 성인이 돼 발병하거나 직업을 겨우 구한 이도 환자인 것이 알려질까 조심한다. 교수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중에도 조현병 환자가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다고 홍씨는 말했다. 직업이 없는 이들은 생활도 곤궁하다. 조현병 환자의 절반이 기초생활수급자다. 홍씨도 수급비 50만원에 단체 상근활동비로 받는 30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식사 뒤 홍씨가 20살 때부터 3년간 지낸 ‘사회복귀주거시설’로 향했다. ‘시설’은 평범한 단독주택이었다. 이층집 1층엔 6명의 남성이, 2층엔 4명의 여성이 함께 생활한다. 시에서 비용을 대고 사회복지사나 간호사 2명이 번갈아 머물며 이들을 돌본다. 우리가 찾아간 오후 시간대엔 50대 여성 간호사가 홀로 있었다. ‘회원들’에겐 낮 시간 외부 활동을 권한다. 늦은 오후 시설로 돌아오면 이들은 식사, 빨래, 청소 같은 생활공동체를 위한 일을 한다. 약물 복용도 관리받는다. 자립을 위한 훈련소인 셈이다. 홍씨도 이곳에서 복지사의 권유로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다녔다. 중증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와의 생활이 힘들었던 홍씨는 이곳이 “집보다 훨씬 좋았다”고 했다. “덕분에 생활습관이 많이 좋아졌어요. 이곳에서 인생의 큰 전환을 맞았어요.” 홍씨처럼 3년을 채우고 만기퇴소한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에 모여 자조모임을 한다. 홍씨는 50대 간호사에게 최근에 바꿨다는 자신의 약을 내보이며 “제대로 잘 먹고 있는 건지 봐 달라”고 했다.

관심이 중요하다

시설을 나와 홍씨가 졸업한 대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인천 도화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홍씨는 대학에 다닐 때 증상이 가장 심했다고 했다. “스스로 인지를 못했지만, 주변에서 특이한 행동을 한다고 했죠. 수업시간에 엉뚱한 돌발질문을 하거나, 아무 데서나 그냥 바닥에 앉아 있곤 했어요.”

홍씨가 졸업한 학교는 지하철 안양역 근처에 있었다. 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홍씨를 잡아세웠다. 역무원인 듯했다. “종종 이런 일이 있어요.” 홍씨가 태연히 말했다. 장애인카드를 보여주자 역무원은 웃으며 홍씨를 보내줬다. “아니, 저 사람이 석철씨가 장애인인지 어떻게 알아요?” “소리가 달라요.” “네?” “노인이나 장애인은 개찰구에 카드를 찍으면 ‘삑’ 소리가 두 번 나거든요. ‘삐빅’ 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역무원은 경로우대증 부정 사용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홍씨는 대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학점은 ‘3.0’. 한때 시험 때마다 백지를 냈던 것에 견주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 했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상위권이었던 홍씨는 중학교에서 중상위권으로, 고등학교 땐 거의 꼴찌로 성적이 떨어졌다. 스스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는 주거시설과 대학 시절을 거친 뒤 지금처럼 어느 정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게 됐다. 졸업 학점은 그 굴곡의 지표였다.

연구실에서 만난 이재령 교수는 밝은 표정으로 홍씨를 맞았다. “석철이가 우리에게 먼저 다가왔죠. 우리 교수들이 또 뭔가 요구하면 나름 노력하고, 그런 모습이 기뻤고.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하고 그랬죠.” 홍씨의 장애가 알려진 건 첫 시험이 있고 나서였다. 백지를 내 성적이 미달된 홍씨가 교수들을 찾아갔다. “장애가 있어 힘들다고 했는데, 스스로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다른 글은 잘 쓰는데 시험만 백지였거든요. 다행히 해가 갈수록 달라졌어요. 처음엔 졸업까지 가는 것만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많이 발전했어요.” 홍씨도 “교수님들이 많은 도움을 줬고 학과 친구들도 모두 친절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주변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증상이 일어나도 본인은 판단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제일 먼저 나타나는 특징이 잠을 못 자는 건데 그럴 때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는 게 중요해요. 석철이처럼 자진해서 의사 찾아가고 약물 조절하면 고비를 잘 넘기지만 그게 안 되면 단순 재발이 아니라 기능이 많이 퇴행해요. 그게 여러번 반복되면 문제가 되죠. 정신질환을 앓는다고 다 정신장애가 되는 게 아니에요. 초기 치료가 중요하고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같은 주변의 관심이 중요하죠.”

조현병의 유병률은 인구의 1%가량이다. 지역이나 문화적 차이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한국에도 50만명가량의 조현병 환자들이 있다. 이 교수는 “감기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오래 앓으면 기관지나 폐가 약해지는 것처럼, 정신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여러 원인에 의해 감정과 판단이 영향을 받는 신체의 일부”라고 했다. 우울증, 강박증이 있어도 웬만큼 이상하지 않고선 병원에 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이 정신의 질환을 악화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홍씨는 2급 사회복지사다. 올해 안에 1급 자격을 따는 게 목표다. 내년엔 정신보건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전문적 지식을 익혀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누군가 분명 해야 할 일인데, 이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사람이 없어요. 저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꽤 오래 곤궁한 생활을 해야 할 텐데,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학교를 빠져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홍씨가 말했다.

홍씨가 개찰구를 지날 땐 ‘알아채기 쉽지 않은’ 기계음이 났다. 퇴근시간에 즈음한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노약자석 앞에 섰다. 홍씨는 자신의 무거운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멨다. “항상 그러냐”고 묻자 “사람들에게 방해될까 봐”라고 했다. 다른 이들과 섞인 홍씨는 그저 말이 조금 어눌하고 다른 이에게 조심스러운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와 나는 가는 길이 달랐다. 목적지 지하철역에서 그가 개찰구를 빠져나갈 때 다시 두 번의 기계음이 울릴 것이다. 그의 장애도 그저 알아채기 쉽지 않게 다를 뿐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여러 병 중의 하나에 불과한 건 아닐까. 주변에 방해되지 않으려 앞으로 짊어진 그의 가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인천 안양/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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