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갈등 뜯어보기
“총학은 빠져라” 농성도 모금도 학생들 자의로
“평생교육” “학위 장사”…갈등 뒤 서열의식 지적도
총장, 면담 요구에도 ‘불통’…경찰투입에 연대 확산
“총학은 빠져라” 농성도 모금도 학생들 자의로
“평생교육” “학위 장사”…갈등 뒤 서열의식 지적도
총장, 면담 요구에도 ‘불통’…경찰투입에 연대 확산
“우리는 정치색을 띤 어떠한 외부세력과도 무관합니다. 오로지 이화인의 목소리입니다.”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본관으로 이어지는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건물에는 이런 문구가 나붙었다. 본관 인근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건물 안팎을 조용히 오갔다. “딸이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총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항의하러 나왔어요.” 이날 본관 부근에는 자녀들의 점거농성을 ‘응원’ 나온 재학생 학부모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도부 같은 건 없어요. 단과대 설립에 반대하는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여 (단체행동 대응을 위해) 교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31일, 농성 주도자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을 ‘이화여대 언론대응팀’이라고 밝힌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학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걸 거부한다”며 투표를 통해 농성단에 합류해 있던 ‘총학생회 소속 운동권’은 빠지라고 결의했다. “모든 사안에 대한 입장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한다는 게 이들의 원칙이다. 이 때문에 농성 상황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도 “이메일을 받아 논의한 뒤 답변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창 여름방학인 이때, 이대에선 지도부도 없이 자발적으로 모인 재학생과 졸업생 등 800여명이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철회와 최경희 총장 사퇴”를 주장하며 ‘점거농성’을 하는 이례적인 모습이 닷새째 계속되고 있다.
■ 현상: 총학생회 배제…SNS로 모인 학생들
학생들의 말처럼, 이대생들의 점거농성은 교내 온라인커뮤니티 ‘이화이언’을 통해 불특정 다수 재학생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지난 28일 이화여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설립한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 학생들의 ‘분노’에 불을 댕긴 것이다. “대학에 불필요한 정원 외 인원을 선발해 등록금 장사를 하려는 게 아니냐” “실업계 고졸 출신 재직자들을 불투명하게 영입하면 일반 학생들과의 공정성 문제가 우려되고 교육의 질과 격을 낮추는 꼴이 된다”는 우려가 이화이언에 봇물처럼 쏟아졌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교내 시위를 하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일부 학생들은 토론을 거쳐 대학평의원회가 열리는 본관으로 이동해 학칙 개정 심의 반대시위에 이어 본관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장기화’ 전망이 나오면서,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까지 나서 1일까지 1천만원 단위로 6차례에 걸쳐 농성 자금 모금을 진행했다. 그 무렵, 학교에는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잇따랐다. 학교 쪽 관계자는 “1일 오전 9시부터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과 관련해 항의를 하고 싶으니 총장실이나 기획처, 교무처로 연결해달라는 전화가 100통 넘게 걸려왔다”고 말했다.
■ 학생들: ‘이대 학벌주의’냐 ‘상아탑 지키자’냐
이대는 지난 7월 초, 동국대·창원대·한밭대 등과 함께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 추가 선정 대상’에 선정됐다. 이대는 미래라이프 대학이라는 이름의 단과대를 설립해 미디어 콘텐츠 기획·제작과 관련한 ‘뉴미디어 산업 전공’과 건강·영양·패션 등을 다루는 ‘웰니스 산업 전공’ 학과를 갖추고 내년부터 150명의 학생을 받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학교 쪽에선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의 재직자나 30살 이상 무직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공해 대학 학위를 취득할 기회를 주면,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 재진입을 도울 수 있고 여성 평생학습자의 고등교육 수요 증가로 학교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학생들은 “1984년부터 (학교 안에) 평생대학원을 통해 유사 전공 과정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데 굳이 단과대까지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기존에 사이버대 등으로도 수요 흡수가 가능한데 ‘이대’ 이름을 내세워 비싼 등록금을 챙기려 한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학생들은 뷰티나 웰니스 등 여성의 성역할을 고착화하는 전공을 개설하겠다는 데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에선 학생들 반발의 근저엔 ‘수능 성적’만이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일종의 ‘서열의식’이 작용한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한 졸업생은 이날 <한겨레>에 “수능을 보고 어렵게 대학에 입학했는데, 특성화고등학교 출신들이 섞이면 ‘학교 급’이 떨어진다는 불안과 공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들 학내 문제에 이례적으로 학부모들이 나선 것도 이런 의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이대 간판을 어떻게 얻었는데, 고졸 애들하고 쉽게 나누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이런 흐름은 최근 몇년 사이 서울대 등에서 나타난 ‘지균충’(지역균형선발을 통해 입학한 학생을 비하하는 말)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다.
■ 학교: 민주적 대화 사라진 독단적 행정 추진
학교와 학생들의 논리 공방과는 별개로, 학교 쪽의 일방적 단과대 추진은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학교 쪽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추진하면서, 단과대 신설 규정을 만들기 위한 평의원회를 개최한 지난 28일이 돼서야 교수들에게 관련 사실을 이메일로 알렸다. 특히 학생들이 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본관 점거 농성에 나섰을 때도 학교 쪽은 대화로 문제를 풀기는커녕 학교 안팎에 1600명이나 되는 대규모 경찰병력을 투입해 학생들을 끌어내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화여대 교수협의회는 1일 성명을 내어 “교수를 비롯해 학생과 동문 등 모두가 수긍하기 어려운 중요한 결정이 보직자 및 소수의 관련자들을 제외하고는 의견 수렴은 차치하고 그 내용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단기간에 급조됐다”며 “졸속으로 추진되는 직업대학 학사과정 설립은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이들은 학내 경찰력 투입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학내의 모든 행위들이 사실 생생한 배움의 과정임을 생각해볼 때, 학생들을 적대시하고 폭력집단화한 학교당국의 행동은 대학의 지성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학생은 물론 교수들까지 반발하자 최경희 이대 총장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과 관련한 대학평의원회 등 앞으로 일정을 중단하고 최대한 의견을 들어 합리적인 판단을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단과대 설립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대학의 가장 중심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학교 본관을 학생들이 점거하고 폐쇄하는 것은 위법한 것이다. 관용으로만 (대응)할 수 없다”며 점거농성에 나선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시사했다. 이에 앞서 강신명 경찰청장도 주동자 등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학교 쪽과 경찰의 방침이 이 자발적인 시위를 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학생들은 총장 회견에 이어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장님은 학생들과 소통보다는 대외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 유감입니다.”
박수진 고한솔 기자 jjinpd@hani.co.kr
[디스팩트 시즌3#14_이화여대 점거농성과 대학들 '쩐의 전쟁'] 바로가기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뒷모습 가운데)이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교내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에서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을 둘러싼 학내 사태와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학생들이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글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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