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수장인 신동빈 회장이 20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국면을 맞았다. 검찰은 100여일 간의 수사를 통해 신 회장을 포함한 롯데 오너 일가 5명의 범죄 혐의를 확인하고 조만간 재판에 넘길 예정이지만, 관심을 모았던 비자금 조성 의혹이나 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의혹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6월10일 240여명의 검사와 수사관 등을 동원해 롯데그룹 본사와 계열사, 신 회장 집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가 수사를 맡았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계열사 간 자산거래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혐의가 있어 수사에 나섰다. 오래 준비했고 가능한한 일찍 끝내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가를 상대로 한 롯데케미칼의 소송사기 의혹과 신격호 총괄회장과 그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씨 등의 수천억원대 탈세 의혹 등을 적발했다.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신동주 부회장, 신영자 이사장 등 오너 일가가 등기이사로 이름만 올린 채 제대로 일하지 않고 수백억원대 급여를 받아 챙긴 정황도 확인했다. 롯데는 오너 일가 5명이 법정에 서게 되는 초유의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롯데그룹은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고객과 협력사 피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도 많다. 무엇보다 수사의 핵심 목표로 삼았던 비자금 부분에 대한 성과가 미흡하다. 검찰은 애초 롯데그룹 정책본부가 각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총수 일가가 이를 각종 로비 용도 등으로 썼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 시작 일주일도 안돼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해마다 3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되고, 수사 막바지에는 롯데건설이 3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확인됐다. 그러나 검찰은 자금의 성격 규명과 용처 등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너 일가와 연관된 것으로 확인된 비자금이 수억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애초 “비자금 조성 혐의가 있어 수사에 나섰다”고 했던 검찰 관계자는 지난 19일에는 “이번 수사의 성격은 비자금 수사가 아닌 경영 비리와 관련한 수사”라고 말을 바꿨다.
특히 제2롯데월드 인허가 로비 의혹은 사실상 손도 대지 못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허가가 난 제2롯데월드는 공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행장 활주로 방향을 변경하는 등 무리수가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학 동창으로 호텔롯데 총괄사장을 지낸 장경작씨가 로비 창구로 지목되기도 했다. 수사 초반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의지를 내비치던 수사팀은 제2롯데월드 건설을 주도한 롯데물산에 대한 압수수색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 등 사실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예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아,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을 수사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서미경씨에 대한 수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으로부터 일본롯데홀딩스 주식을 증여받고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혐의를 받는 서씨는 현재 일본에 머물며 검찰의 입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강제 입국조치를 준비함과 동시에 20일 국세청과 협의해 국내에 있는 서씨의 전 재산을 압류조치했다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