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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원, ‘사법농단’ 수사 초기부터 ‘변호사 구실’ 하나

등록 2018-06-20 11:48수정 2018-06-20 16:33

대법원 ‘KTX 여승무원 사건 참고자료’ 배포 논란
“근로관계 판단 엇갈린 하급심 판결 정리한 것”
‘피고인 될 사람 앞장서 변호하는 꼴’ 비판 예상
KTX 해고승무원 21일 ‘관련자 퇴진’ 요구하기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대법원이 갑자기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앞으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큰 사건을 두고, 최종심 법원이 마치 당사자인 양 수사 초기부터 변호에 나선 모양새다.

대법원은 20일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 사건 관련 정리’라는 제목의 ‘참고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대법원은 참고자료에서 ‘같은 내용의 소송 두 건에 대한 원심(2심)의 판결이 엇갈려 이를 통일해 정리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같은 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사건과 마찬가지 새로운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재판연구관실의 집단지성’과 ‘소부 대법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해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11월 케이티엑스 여승무원 34명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과 뒤이어 다른 여승무원 115명이 추가로 낸 같은 내용의 소송은 1심에서 모두 원고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원고승소와 원고패소로 판결이 엇갈렸다. 대법원은 상고 된 지 3년6개월만인 2015년 2월26일 두 사건을 묶어서 한꺼번에 판결하면서, “원고 케이티엑스 승무원과 피고 한국철도공사 사이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뿐만 아니라 파견근로관계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코레일 근로자가 아예 아니라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원심에서 원고 34명 승소였던 사건은 원고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원심에서 원고 115명 패소였던 사건은 상고기각으로 원고패소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참고자료에서 케이티엑스 여승무원 사건에 적용했던 법리가 같은 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사건의 법리와 같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법원은 근로자 파견에 해당하는지는 원청 회사가 업무와 관련해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원청 회사 직원들과 공동작업을 하는 등 실질적으로 작업에 편입됐는지, 파견회사가 근로자 선발이나 작업·휴식·감독 등에 독자적인 결정 권한을 행사하는지 등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밝히면서,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는 근무기간 2년이 넘은 근로자의 파견근로관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 법리에 따라, 케이티엑스 여승무원의 경우 ‘근로관계의 실질’에 의할 때 노무 도급의 요소가 파견 요소보다 우세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케이티엑스 여승무원 판결은 현대자동차 사건과 한 묶음으로 심리돼 파견근로 관계의 새로운 법리를 선언한 판결”이라며 “이런 새로운 법리 선언이 예정된 사건의 경우 재판연구관실에서 집단지성에 의해 심층 연구와 여러 단계 검증을 거치며, 소부에서 주심 대법관을 포함한 대법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어야만 선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특히 소부 대법관 4명 전원이 심혈을 기울이는 공보판결은 선고기일 기준으로 한 소부에 평균 5~6건에 불과하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주심은 고영한 대법관이고, 관여 대법관은 이인복·김용덕·김소영 대법관”이라고 덧붙였다. 케이티엑스 판결이 주심인 고 대법관만 비판받거나 재판거래로 의심받을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앞서 재판거래 등 의혹 문건의 작성을 주도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이인복 대법관 등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재판거래가 가능하냐”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의 이날 참고자료 배포는 케이티엑스 여승무원 사건 판결을 둘러싼 ‘재판거래’ 의혹의 검찰 수사에 대비해 미리 방어 논리를 내놓은 것으로, 헌법기관이 취할 행동은 아니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케이티엑스 해고 승무원 쪽인 ‘케이티엑스 열차승무지부’와 ‘케이티엑스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는 21일 오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농단 수사의 변호사를 자처하고 나선 대법원을 규탄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케이티엑스 해고승무원들은 “대법원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법원행정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달라고 요청한 다음날 곧바로 재판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대법원은 수사에 협조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법농단 의혹을 은폐하고 범죄혐의자들을 비호하는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검찰의 수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범죄 혐의자들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현재의 법원에서 제대로 된 재판이 가능할지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케이티엑스 해고승무원들과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된 대법관 및 법원인사들의 즉각 퇴진을 요구할 예정이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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