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경기 성남시 자신의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 2월5일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축! 삼성 이재용 석방. 2심에서 대부분 무죄, 나머진 집행유예 선고. 법원의 현명한 판결에 경의를 표합니다.” 당시 정치권에선 항소심을 맡은 정형식 재판장의 아내와 김 의원이 ‘이종사촌’이라는 사실이 회자됐다. 김 의원도 “정 판사가 이종사촌 매형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당시엔 그저 ‘화제’에 그쳤지만, 양승태 대법원이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상고법원 입법 로비에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정 부장판사와 ‘동서’ 사이인 민일영 당시 대법관(현 사법연수원 교수)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이던 김 의원 로비에 동원하려 한 사실도 확인됐다. 실제 로비가 이뤄졌는지 확인되진 않지만, 의도 자체만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6일 <한겨레> 취재결과, 2015년 법원행정처는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을 개별 공략하는 방안 등을 담은 문건을 여러 건 만들었다. ‘상고법원안 법사위 통과 전략’(3월7일), ‘상고법원 입법추진 환경 및 대응전략’(3월15일),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전략’(5월6일), ‘상고법원 입법추진 환경 및 국회 통과 전략’(6월21일) 등이다. 법원행정처는 행정처 소속 판사나 법원장뿐 아니라 현직 판사와 판사 출신 변호사의 연고·친분 등을 분석해 국회의원과 이른바 ‘일대일 매칭’을 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 문건 중에는 검찰 출신으로 상고법원에 비판적이던 김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그와 인척관계인 민일영 대법관과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키맨’으로 지정해 “친분 관계를 활용한다”는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 계획처럼 이들이 김 의원에게 실제 연락을 취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법행정을 맡은 법원행정처가 독립된 재판 업무가 생명인 최고 법관까지 로비에 동원하려 계획을 세운 것 자체가 당시 대법원장 및 행정처, 대법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 부장판사는 <한겨레>에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미공개 문건 내용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사법연수원도 민 전 대법관 관련 질의에 응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일체의 로비를 받은 적 없다. (정 부장판사 등이) 그런 것으로 제게 부탁할 분들도 아니다”고 답했다.
법원행정처는 또 당시 국회 법사위원이었던 서영교 의원을 설득하려고 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서 의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판사 출신 변호사를 앞세우는 방안도 검토했다. 지역구 의원에 영향력이 있는 지역 언론을 동원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검찰 출신 김도읍 의원에게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지역구 ㄱ신문 대신 ㄴ신문을 활용하자는 계획을, 변호사인 전해철 의원에게는 “영향력 있는 지역지가 없으니 다른 매체를 통해 압박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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