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의 핵심 기획자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여론조작 사건 관련 문건이 새로 발견됐다. 앞서 대법원 자체조사단은 ‘원세훈’, ‘국정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건을 모두 조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추가로 ‘원세훈 문건’이 발견됨에 따라, ‘키워드’ 방식으로 진행된 대법원 자체조사가 부실했거나 의도적 누락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한겨레> 취재 결과, 검찰 수사에서 새로 확인된 원세훈 문건에는 2013년 1심 공판 진행 상황과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 관련 검토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자체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임 전 차장 등 컴퓨터에서 ‘원세훈’, ‘국정원’, ‘국가정보원’ 등 키워드로 검색한 문건을 ‘전수 조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된 문건은 대법원에서 제목과 일부 내용을 공개한 문건 410개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수 조사가 아닌 선별 조사가 이뤄졌을 가능성과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 없다’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일부러 누락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사건 재판부가 법원행정처에 재판 진행 상황을 ‘직보’한 점도 의혹을 낳고 있다. 당시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은 우여곡절 끝에 1차로 대선 개입 트위터 글 5만여건, 2차로 121만여건을 추가하는 공소장 변경을 했다. 그 무렵 1심 재판 주심인 이보형 판사는 공판검사로부터 ‘검찰 수뇌부가 공소장 변경에 반대한다’는 수사팀 고충 등이 담긴 이메일을 받았다. 이 판사는 재판장이던 이범균 부장판사와 상의한 뒤 해당 메일을 당시 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던 임 전 차장에게 보낸 사실이 대법원 자체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일선 재판부가 법원행정처에 재판 관련 사안을 시시콜콜 보고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대법원 자체조사단은 임 전 차장이 먼저 이메일 보고를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주심 판사가 재판 업무와 무관한 기조실장에게 ‘알아서’ 보고한 것이라면 이 역시 심각한 문제다. 특히 이메일 보고 시점은 재판부의 공소장 변경 허가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시기였다.
한편 사법농단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추가 문건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법원은 검찰 포렌식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확인된 언론·정치인 관련 문건 제출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 협조’를 약속한 지 한 달이 지난 터라 대법원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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