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 <한겨레> 자료사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 농단’ 의혹 핵심 관련자의 압수수색 영장이 또 무더기로 기각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폭 협조’를 약속했던 문건 임의제출 역시 법원행정처가 ‘수사 관련성’을 하나하나 따지며 걸러내고 있다. ‘수사를 받는 기관이 증거의 적절성을 심사하는 꼴’이라는 비판과 함께, 국회가 ‘특별재판부’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5일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김민수 전 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 등의 집과 사무실을 특정해 재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공모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또 사법 농단 의혹에 관련된 전·현직 법관 30여명의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 및 이메일 훼손·변경·삭제를 막기 위한 보전조치 영장도 기각했다. 법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및 임 전 차장, 이규진 전 상임위원, 심경 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총괄심의관(현 변호사) 등 3명의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만 ‘찔끔’ 내주는 데 그쳤다. 대법원이 자체 조사에서 ‘최종 책임선’으로 규정지은 임 전 차장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현직 판사 ‘비호’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찰 관계자는 “임 전 차장 유에스비(USB)에서 나온 수사 대응자료,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보고자료 등 수천건 파일 등 다수가 보강된 상태였다”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21일 압수수색 당시 검찰이 확보한 임 전 차장 유에스비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탄압을 거부한 이탄희 판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수사 대응 자료 등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법농단’ 핵심 관계자들과 영장을 기각한 영장전담 판사들의 관계도 영장심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더한다. 허 부장판사는 검찰이 재청구한 영장에 범죄 혐의가 일부 기재된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의 배석판사였다. 앞서 1차 무더기 영장 기각 논란을 부른 이언학 부장판사도 박병대 전 처장의 배석판사였다.
검찰과 대법원은 이날 영장 기각과 문건 임의제출을 두고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영장 기각 전날) 행정처로부터 사법정책실, 사법지원실, 인사 및 재판 자료, 이메일, 메신저 등을 제출할 수 없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최종 통보’를 한 바 없다”면서도 “수사 필요성 및 관련성이 없는 파일은 검찰에 제공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편 검찰은 디가우싱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역시 복구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법농단’의 최종 책임선을 규명하기 위한 이들에 대한 강제수사가 차질을 빚으면서, 검찰은 일부 자료만을 기반으로 어려운 수사를 이어가야 하는 형편이 됐다. 법원이 “사법농단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약속과 달리, 통상 범죄 수사 때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적용해 검찰 수사를 막아나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소은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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