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견실은 울고 화내고 웃는 공간이다. 영화처럼 교도관은 더이상 접견실 뒤편에서 대화를 받아 적지 않는다. 모든 접견이 폐회로티브이(CCTV)를 통해 녹화·녹음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대중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구치소는 주말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수용자 접견과 운동을 위해 교도관들은 토요일에도 번갈아 출근한다. 우는 사람, 웃는 사람, 화내는 사람. 접견실은 늘 만원이다. 감시와 훈육뿐만 아니라 돌봄과 보살핌도 교도관의 일이다. 구치소의 주말 풍경을 취재했다.
― IT 발달이 선물한 새로운 접견
방문 않고 인터넷·스마트폰으로
교정시설 간 화상 연결도 가능
“CCTV 녹화 덕 대화 안 받아적어”
― 주말 일반접견은 전면 예약제
그냥 오면 헛걸음질…여전히 많아
예약 뒤 ‘노쇼’ 땐 다음 예약 불이익
수용자 사진 SNS에 올려 골머리도
― 출소 뒤 삶도 보살피는 교도관
가난한 출소자 결혼식 치러주고
중고 용달차 마련해 자립 돕기도
“월급 받으며 봉사하니 멋진 직업”
“아빠, 언제 와?”
모니터 너머의 어린 딸이 몸을 배배 꼬며 재롱을 피웠다. “정신없어. 가만히 좀 있어.” 아내는 소리를 질렀다. “왜 애한테 그래. 아빠 크리스마스 때는 갈 수 있으니까 엄마 말 잘 듣고 있어야 돼?” 사내는 화면 속 딸을 쓰다듬었다. 한 손으로는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화면 옆에 비켜 있었다. 잘 쳐다보지 않았다. “엄마, 식사 잘 잡수고 계셔? 무릎 아픈 건 어떠셔?” “내 걱정 말고 니나 잘 먹고 잘 자그라.” “네. 걸레질 너무 많이 하지 마셔요.” 엄마는 윗도리를 들어올려 눈을 닦았다. 아내는 얼굴이 좋았다. “얼마 전부터 새로 일 나가고 있는데 시급도 괜찮고 일도 편해. 오래 다닐 수 있을 거 같아.”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옆에서 춤을 췄다. 아내가 말했다. “이제 시간 거의 다 됐어.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해.” “아빠~. 사랑해~. 빨리 와~.” “자기야. 돈 조금 부쳤어. 다들 잘 지내니까 집 걱정 하지 말고 건강 잘 챙겨. 다음주에 또 면회 신청할게~.” 사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을 못했다. 접견시간 종료를 알리며 화면이 꺼졌다. 15분이 지났다. 눈이 빨개진 사내가 인터넷접견실을 나오며 벗었던 상의를 다시 입었다. 수용자는 접견 시 수의 윗도리를 벗고 티셔츠 차림으로 접견할 수 있다. 수용자와 가족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한 수용자는 갓난아이를 업고 온 아내를 만났다. 엄마가 아이를 들어 유리막 가까이 댔다.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남자가 유리막을 어루만졌다. 20대로 보이는 또 다른 수용자는 친구들과 함께 온 여자친구를 접견했다. 친구들의 놀림에 수용자가 말했다. “야, 나 나가면 니들 다 죽는다.” 떠드는 소리가 접견실 밖까지 들렸다.
접견실 분위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방에선 고성이 오간다. “빨리 (피해자와) 합의를 봐서 날 빼줘야 할 거 아냐. 변호사도 션찮은 거 같은데 전관으로 좀 바꾸라고. 밖에서 도대체 뭐 하는 거야. 하루하루가 죽겠는데….” 20대 수용자가 부모로 보이는 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유리막 너머의 부모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지난달 26일 오전, 오승훈 기자(왼쪽)가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수용자들이 구매한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구치소에선 영치금으로 빵, 소시지, 컵라면, 티셔츠, 치약 등 180여가지의 물품을 살 수 있다. 동부구치소 제공
“저렇게 철이 없는 애들이 있어요. 지가 부모 가슴에 못질한 건 생각 안 하고 자기 빨리 빼달라고 막 소리 지르고 화내고 가관이죠. 빚내서 빼달라는 수용자도 있어요.” 민원과 교도관이 말했다.
지난달 23일,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서울동부구치소 접견실은 분주했다. 토요일은 예약만으로 접견이 이루어진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20분까지 하루에 통상 57회차 정도 접견이 진행된다. 접견시간은 10~15분 사이다. 수용자와 가족이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일반적인 접견부터 인터넷접견, 화상접견, 스마트접견까지 방법도 다양하다. 인터넷을 이용해 집에서 접견할 수 있고 수용자가 기결수인 경우에는 스마트폰으로도 접견이 가능하다. 교정시설끼리의 화상 연결도 가능하다. 광주에 사는 가족이 광주교도소에서 화상접견을 통해 동부구치소의 수용자를 면회하는 식이다. 수용자는 민원인이 예약한 시간에 접견실로 내려와 인터넷, 또는 스마트접견실에서 면회를 하게 된다. 아이티(IT) 기술 발달은 접견의 풍경도 달라지게 했다.
다만 증거인멸 등의 우려 때문에 모든 접견은 녹화되고 교도관은 화면을 통해 접견 내용을 모니터링한다. “예전에는 접견실 한켠에 앉아서 대화 내용을 받아 적었는데 이제는 다 녹화가 되니까 한결 낫죠. 여기 보듯이 방마다 폐회로티브이(CCTV)가 있잖아요. 민원인의 뒤편에서 수용자의 얼굴만 보이도록 촬영하죠. 가끔 검찰에서 수용자 접견 녹화 내용을 보내달라고 요청이 와요. 구속 피의자가 누구랑 만나 뭔 얘길 했는지 보려고 하는 거죠.” 민원과장이 폐회로티브이 모니터를 보여주며 말했다.
최근에는 증거인멸보다 지인들이 수용자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 소셜네트워크(SNS) 등에 올리는 일이 적지 않다고 했다.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저속한 행동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직원들이 모니터를 주시하거나 접견실 복도를 순찰하는 이유다.
어떤 수용자는 접견을 못 하고 접견자 대기실에만 있다 다시 수용사동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접견 예약을 한 민원인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접견 ‘노쇼’(No Show)다. “예약시간에 못 맞추거나 늦게 와서 접견을 못 하는 경우도 많죠. 그럴 때는 미리 취소하는 게 낫거든요. 취소하지 않으면 다음번 접견 예약에 페널티가 있으니까요. 국번 없이 1363 걸면 돼요.”
2008년 이명식씨 결혼식 사진. 신랑은 절도 전과 7범이었고 아내는 지적장애1급 장애인이었다. 당시 서울성동구치소(현 동부구치소) 유장익 교도관은 이들이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치를 수 있도록 발벗고 도왔다. 동부구치소 제공
일제히 벨이 울리며 한 회차 접견이 끝났다. 다른 접견실에서도 수용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눈이 충혈된 수용자가 많았다. 멀어지는 가족을 향해 손을 흔드는 수용자도 있었다. 건너편 가족들은 수용자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까치발을 하며 서성거렸다. 상황실에 대기하고 있던 민원과 교도관들이 이들을 데리고 수용사동까지 계호(경계와 보호)했다. 접견실 철문을 열고 나오면 보안검색대가 나타난다. 이를 통과한 뒤 검신이 이뤄진다. 교도관이 수용자의 상의 깃부터 팔과 몸통, 다리까지 훑는 과정이다. 그다음엔 수용자를 앞세워 엘리베이터로 이동한다. 교도관은 항상 수용자 뒤쪽에 있어야 한다. 시선 내 계호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교도관들이 접견이 끝난 수용자들을 수용사동 앞에 데려다주고 접견을 앞둔 수용자들을 데리고 온다. 교도관들은 이것을 ‘연출’이라고 부른다. 한 작가의 표현대로 수용자는 ‘식물’이었다. 교도관이 들었다가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야만 하는. 걷고 보고 열고 닫는 교도관의 일은 접견에서도 반복됐다.
민원과 업무는 연출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예약자를 응대하는 접수창구도 민원과 교도관의 일이다. 지난해 6월부터 교정시설의 토요일 접견이 예약제로만 진행되는 까닭에 이를 모르고 면회 왔다가 헛걸음질하는 가족도 많았다. 짜증을 내는 민원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교도관의 몫이다. “가족분들이 기본적으로 화가 난 상태로 오시죠. 내 자식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니까요.” 민원인에게 ‘어머니’ ‘아버지’라고 살갑게 부르며 업무를 처리하던 여성 교도관이 말했다. 동부구치소는 수용자들의 접견과 운동을 위해 토요일에만 평균 40명(보안근무 18명, 민원근무 22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동부구치소의 교도관들은 감시와 훈육뿐 아니라 돌봄과 보살핌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있었다. 전과 7범 누범자의 결혼식을 치러준 교도관은 한 예다. 2008년 11월, 서울 서초동 서초웨딩홀에선 4쌍의 합동결혼식이 열렸다. 신랑 가운데는 절도 전과 7범의 이명식(가명·46)씨가 있었다. 당시 성동구치소를 출소한 그는 10살 연상의 지적장애1급 장애인 처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의 가난은 눈물겨웠다. 세상은 한번도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이씨의 면목동 집을 방문했을 때, 그의 아내가 유장익 교도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 같은 사람도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 한 장 갖고 싶어요.” 유 교도관은 이들 부부에게 한국갱생보호공단(현 법무보호복지공단)이 마련한 합동결혼식을 연결해줬다. 이미 신청이 마감된 상황이었으나 통사정을 했다. 교정 봉사활동을 하는 목회자와 주민들이 신랑신부의 예복과 화장을 거들었다. 마지막 욕심이 생겼다. ‘결혼식도 하는데 신혼여행까지 보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 자초지종을 담아 메일을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잊고 지냈는데 결혼식 전날 연락이 왔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신랑신부는 평생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첫날밤을 보냈다.
유 교도관은 또 다른 출소자의 자립을 위해 중고 용달차를 알음알음 마련해주기도 했다. 직업적 소명의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구치소 근무 마지막날, 유 교도관이 내게 말했다. “교도관은 참 멋진 직업입니다. 보통사람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서 봉사를 한다지만, 우리는 월급 받아가면서 봉사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멋진 직업이 어디 있을까요?” 그에게는 이 멋진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올해 정년이다. <끝>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