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흔히 하는 말 중에 ‘검방하면 헬리콥터도 나온다’는 말이 있다. 수용자들이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만들어 사용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구치소에도 삶의 소소한 즐거움들은 있다. 일러스트 김대중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교정시설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된다. 교도관의 눈을 피해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만들고 수용자들끼리 내기와 노름도 한다. 신문·잡지를 구독하며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기도 한다. 법무부 시계는 오늘도 잘도 돈다. 서울동부구치소 교도관이 돼 수용자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봤다.
수용동 순찰을 돌 때였다. 야간근무자 박아무개 교도관이 13번 방(조사수용방)에 있는 수용자와 얘길 하고 있었다. 10번 방 독거실 배식구 앞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박 교도관이 10방으로 다가가자 반짝였던 것이 갑자기 사라졌다. 박 교도관이 10방 수용자에게 말했다.
“방금 그거 뭐예요? 줘 보세요.”
“예? 별거 아닌데요.” 수용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잠깐 줘 보시라고요.” 박 교도관이 어르듯 말했다.
“별거 아닌데…”라고 말하며 수용자가 배식구로 내민 것은 손거울이었다.
“이걸로 뭐 한 거예요? 왜 13방을 쳐다본 거죠?”
“아니 13방이 시끄러우니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의하겠습니다.”
“이거 반입 금지물품인 거 아시죠?”
“갖고만 있고 안 쓸게요. 네?”
“안 걸리면 모르겠는데 걸렸으니까 압수할게요.”
“아니 그게….”
“이거 갖고 계시면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또 만들 거잖아~.” 박 교도관이 웃었다.
“…….” 수용자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순찰을 돌며 박 교도관이 압수한 손거울을 내게 건넸다. 담뱃갑 크기의 손거울이었다. 네 모서리 부분은 둥글게 마모처리가 돼 있었다. 손재주가 좋았다. 박 교도관이 웃으며 말했다. “신기해. 접견 때나 출정 때 2~3번씩 검신(몸 검사)을 하는데 어떻게 이런 거를 가지고 있는지.” 다음주 초에 10방을 검방(방 검사)할 거라고 근무 파트너인 이아무개 교도관이 말했다. “다른 게 또 있을 거예요.”
감옥에서 흔히 하는 말 중에 ‘검방하면 헬리콥터도 나온다’는 말이 있다. ‘한 달 동안 검방 안 하면 수용자가 헬리콥터 타고 탈옥한다’는 버전도 있다. 마치 청계천에서 탱크도 만들어낸다는 말처럼 두 버전 모두 수용자들이 감방에서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만들어 사용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필요가 물건을 창조한다. 궁하면 통하는 법은 여기서도 통용된다. 이른바 ‘슬기로운 감방생활’이다.
실제 교정시설에서 수용자들이 교도관 몰래 만드는 물건들은 다종다양하다. 화장실 바닥에 칫솔을 갈아서 날카로운 흉기로 만드는 신석기(간석기)형부터 수건 속 실을 교직해 십자가를 만드는 종교형, 밥을 발효시켜서 막걸리맛 음료를 만들어 먹는 술도가형, 교도관들이 버린 꽁초를 재처리(?)해 성경책 종이에 말아 피우는 풍류형, 은박지와 건전지, 볼펜 스프링을 활용해 라이터를 만드는 첨단형까지 인간 문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 과연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답다.
수용자들이 구매한 생수가 구매팀 창고 한 켠에 쌓여있다. 무겁고 부피가 많이 나가는 탓에 구매부서 교도관들이 배달하기 어려운 품목이다. 서울동부구치소 제공
수용자들의 ‘잔머리’가 늘어나면 교도관들의 머리도 진화한다. 신석기형과 종교형, 술도가형은 불시 검방을 통해 걸러낸다. 풍류형은 교도관들이 수용사동에 들어올 때 담배를 사물함에 두고 오게 하는 것으로 원천봉쇄했다. 라이터는 은박지가 들어간 구매 물품을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거나 다 쓴 건전지를 반납하게 하고, 스프링이 들어간 모나미 볼펜을 구매품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차단했다.
여기서 잠깐. 반입과 휴대가 금지된 담배는 어떻게 피웠을까. 예전에는 새로 입소한 수용자들이 항문 속에 비닐로 싼 담뱃잎을 넣어 들어오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고는 하지만 최근에는 재활용이 대세다. 노후 교도소는 수용사동에 근무자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야간근무 시 똥이 마려우면 교대자를 부르기 번거로워 사동도우미(소지)들이 빨래하는 배수구에서 급처리(!)를 하는 일이 잦았다. 교도관이 거기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배수구에 버리면 다음날 아침 소지들이 똥 묻은 담배를 물에 씻어 말린 뒤 성경책 종이로 말아 피웠다고 한다. 근무자 화장실이 구비돼 있고 담배를 외부에 맡기고 들어가게 돼 있는 서울동부구치소에서는 모두 쉽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형집행법(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이 근본적으로 교정·교화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자유형을 당한 수용자들에게 담배 같은 걸로 고통을 가중시키는 국가가 과연 옳은지 모르겠어요. 미국 등 서구에서는 수용자들의 흡연을 이미 오래전부터 허용해 왔잖아요. 만약 화재 등의 사고 위험 때문이라면 규정된 흡연 장소에서 붙박이로 된 라이터를 사용하게 하면 되는데.” 이 교도관이 말했다. 교정시설에 가보면 자유를 박탈당한 것 자체가 이미 큰 처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반입이 금지된 물건을 굳이 만들지 않더라도 수용거실에서 할 만한 소일거리는 또 있다. 하루하루가 무료한 수용자들은 그 안에서 게임할 거리를 찾는다. 사람 사는 동네에 내기와 노름이 빠질 수 없다.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들의 나이를 두고 시간차로 내기를 하거나 <복면가왕>의 대결 결과를 두고 내기를 걸기도 한다. 월드컵 등 한국 대표팀의 경기 결과도 단골 내기 메뉴다. 수용자들은 법무부 방송 ‘보라미’를 통해 주로 녹화본을 보는데 때에 따라서는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기도 한다. 단, 녹화본은 내기를 할 수 없다. 당일 배달된 신문을 통해 경기 결과를 미리 알게 되기 때문이다.
교정시설에서 허용된 잡기는 장기·바둑이다. 그러나 수용자들은 금지된 윷놀이를 더 즐긴다. 윷은 칫솔을 갈아서 만들고 윷놀이판은 종이에 그리면 그만이다. “검방해서 압수해도 어느새 또 만들어서 놀더라고요.”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판돈은 우표나 영치금으로 갈음한다. 내기에서 지면 자기 영치금으로 승리자가 필요한 구매품을 사주는 식이다. 모든 노름이 그렇듯이 푼돈으로 시작한 내기는 점점 판돈이 커지게 마련이다. 개당 2000원 하던 우표 한 절지(25개, 5만원 상당)를 몇 장씩 판돈으로 거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과하면 탈이 나는 법. 수용자들끼리의 노름으로 갈등과 사고가 빈번하자 교정당국은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2000원짜리 우표를 선납등기 라벨 스티커로 대체해 사용할 때마다 구매하도록 한 것이다. 수용자들의 일상 속 소소한 ‘재미’가 줄어들었지만, 사고 위험성도 줄었다.
동부구치소 각 수용방 입구 오른쪽 현원 알림판에는 방별로 구독하는 신문 이름이 쓰여 있다. 횡령·사기 등으로 구속된 수용자들은 주로 경제지를 본다는 속설이 있다. “세상 물정을 알아야 나가서 또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교도관이 웃었다.
구치소의 모든 철문은 교도관의 지문 인식으로 열린다. 지난달 27일 오후, 오승훈 기자가 서울동부구치소 8층 수용사동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동부구치소 제공
교도관들과의 기싸움도 수용자들의 오래된 놀이다. 방마다 ‘왈왈이’라고 불리는 수용자들이 있다. 방에서 제일 발언권이 센 수용자를 일컫는 은어로, 한때 방장이라고 불렸다. 주로 조직폭력배나 폭력사범들로 자신의 권력을 다른 수용자들에게 과시해야 할 때 사동 근무자에게 시비를 걸거나 비아냥거린다. 여기에 발끈하지 않는 게 노련한 교도관의 ‘초식’이다. 수용사동에서 들은 다음과 같은 대화가 그 예다.
“약 미리 달라고, 약. 최○○씨, 당신이 말이야. 교도관이면 다야? 왜 약을 미리 안 주냐고.”
“에이~.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말이 당신인데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부장님~ 아니면 근무자님~ 이렇게 불러야죠. 그리고 약은 투약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갑자기 달라고 그러면 어떡해요. 알 만한 분이 왜 그러실까~.”
“보니까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밖에서 보면 딱 동생뻘이고만그래~.” 다른 수용자들이 웃는다.
“밖에 나가면 내가 삼촌이라고 불러 드릴게요. 근데 여기는 밖이 아니잖아. 본인은 수용자고. 난 교도관이니까 통제에 따라주셔야죠.”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기 전, 왈왈이를 잠시 방에서 불러내는 게 포인트.
“정 그렇게 불만이 있으면 잠깐 나와 보시든가.” 왈왈이가 방을 나섰다. 근무실 옆 상담실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 김○○씨 생활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망이에요.”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왈왈이의 태도는 급변했다.
“아. 네. 부장님. 좀 전에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갑자기 화가 나서. 그러면 안 되는데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그래요. 나이도 많으시고 어른이시니까 앞으로도 좋은 방 되도록 노력해주세요~.”
“네. 부장님. 고맙습니다.”
왈왈이는 방에 들어가 ‘자기가 교도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떠벌린다고 한다. 다음날 그는 먼저 최아무개 교도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려 사건을 만들고 시간 때우려 내기를 벌이는 구치소도 사람 사는 동네였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 5회에서는 울고 웃고 화내는 구치소 접견장의 주말 풍경과 누범 수용자를 결혼시켜 준 교도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