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자유를 ‘국민 기본권’으로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12조의 3항은 체포·구속·압수수색을 할 땐 반드시 검사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이런 기본권마저 상고법원 거래를 위한 흥정 수단으로 여기는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예상된다.
31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추가 공개한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문건 196건 가운데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2015년 7월 기획조정실 작성) 등을 보면 “강온 양면 설득전략에 따른 빅딜 추진”이라며 “상고법원 안은 다른 현안과 비교 불가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시제이(CJ·대법원장) 최대 역점사업이자 사법부의 가장 중차대한 추진과제”라고 밝히고 있다. 또 같은해 9월 작성된 ‘9월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을 보면 강조하는 톤이 더 세져 당시 시기를 “비에이치(BH·청와대) 설득을 위한 중대 분수령으로 법무부와의 건곤일척의 협상 목전에 둔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빅딜을 위한 협상 카드’로 △체포·구속 영장제도 개선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 절차 정비 및 증거능력 인정 확대 방안 △공안사건 전담 재판부 설치 방안 등등을 제시한다. 영장 없는 체포를 활성화해 수사기관에 재량권을 부여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헌법 가치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또 검찰 ‘숙원 사항’인 디지털 증거인력 인정 확대를 통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법무·검찰을 우군으로 돌려세울 것을 계획했다. 공안전담재판부 신설 문제를 언급할 때도 오직 검찰의 구미를 맞춰 상고법원을 도입해야 하는 쪽에만 온통 신경이 집중돼 있다. 이와함께 플리바게닝 제도 도입도 검토됐다. 이에 대해 당시 법원행정처는 “뇌물·마약·조직폭력 사건 등에서 먼저 도입하고 차츰 확대해 나가는 방식으로 (법무부와) 협상 가능”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사법방해죄를 신설하는 방안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협상 도구로 거론된다. 형사처벌을 받게하거나 면하게 할 목적으로 수사하는 공무원에게 범죄 구성 사실에 관해 허위 진술을 하면 처벌하도록 하겠다는 건데, 현행법상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는 ‘진술거부권’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또 이 문건들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별 계획도 세웠다. 2015년 7월 작성된 문건에서는 1단계로 당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대법원장을 2015년 7월13일 예방했을 때 상고법원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2단계로 광주제일고 동창인 당시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이 7월 마지막주 김 장관을 접촉해 ‘호혜 분위기’를 조성하고, 3단계로 행정처 실장이 8월 임시국회가 임박한 시점에 법무부 검찰국장 등 실무진과 회동한다는 것이다. 또 같은 해 9월 작성 문성에서는 2015년 9월11일 법무부 청사에서 법원행정처 차장, 기조실장, 정책실장과 법무부 차관, 검찰국장 간 실무협상을 갖고 “빅딜 시도”를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 계획들이 실제로 실행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영장제도 개선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문건에서 “상고법원과의 빅딜을 제안하고 상고법원 도입은 좌절 불가의 최우선 과제임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며 “협상 결렬은 양 기관의 전면적 관계단절 결과를 초래할 것을 경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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