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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양승태 행정처 ‘법원 우군화' 발원지는 박병대?

등록 2018-08-01 19:00수정 2018-08-01 20:13

‘사초’ 같은 ‘체크리스트 처장님 지시사항’
지난달 ‘사법농단’ 의혹 관련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연거푸 기각되면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의 최종 책임 선을 임 전 차장에 한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법원행정처가 추가 공개한 문건에는 법원행정처장 등의 개입 정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다수 등장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4년 10월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걸어가고 있다. 맨앞은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4년 10월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걸어가고 있다. 맨앞은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민수 전 기획조정실 심의관 컴퓨터에서 발견된 ‘체크리스트’는 양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의 현안과 의사결정 과정을 낱낱이 드러내는 ‘사초’와 같다. 해당 문건에는 ‘처장님 지시·말씀사항’, ‘차장님 지시사항’, ‘실장님 지시사항’ 등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2016년 1월30일 ‘체크리스트’의 ‘처장님 말씀’에는 “법원 우군 만들기 전략”이 나온다. 판사가 아닌 재판연구관, 사법정책연구원 전문위원 및 외교부 외무관·위원회, 상임조정위원, 국선전담 등에게 연하장, 사법논집, 법원소식지 등을 보낸다는 내용인데, 각종 사법정책에서 ‘공조’가 필요한 이들에게 사법부의 입장을 백분 이해시킨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박병대 전 대법관이었다. 양승태 행정처 문건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우군화 전략’이라는 말의 근원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행정처장이 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의견을 많이 내놓던 국회의원들에 대한 동향 파악을 주문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2016년 4월15일 작성된 ‘체크리스트’에는 ‘처장님’ 항목에 “김진태 의원에 대한 동향 분석 필요”하다며, 분석 대상으로 ‘보좌진 내역, 친한 사람들, 콘택트포인트, 법원에 계속된 사건 내용’ 등을 기재했다. 처장 지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처장님’ 항목 끝자락에는 ‘사견’을 전제로 ‘민변에 대한 보고서 작성 필요’라는 언급도 나온다. 당시 행정처장은 1일 퇴임한 고영한 대법관이다.

2016년 6월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온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6년 6월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온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고 전 처장이 양 대법원장 시절 재판에 문제를 제기하는 민간인을 ‘부당소송 제기자’로 규정하고 대책을 ‘깨알’ 지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같은해 4월1일자 문건에서 ‘처장님’은 “서OO 같은 부당소송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을 지시한다. 문건에 언급된 서씨는 행정처가 각종 민원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했다고 주장해왔고, 현재 양 대법원장 시절 진행된 재판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문건에는 ‘실장님’이 “소권을 남용한 부당한 소 제기에 대한 해외 각국의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연수법관에게 과제를 주거나 서법정책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기겠다고 제안하는 내용도 나온다. 민간인 소송을 ‘부당소송’으로 규정하고 처장과 실장 등이 앞다퉈 대책을 강구하는 모양새다.

임종헌 전 차장은 ‘처장님 지시사항’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밀하게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체크리스트’ 곳곳에 등장하는 ‘차장님 지시사항’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안전행정위원회 등 소속 의원들의 “출생지 현안, 지역구 관련 소송, 지역구 내 법원 신설 요구 등”을 수집하라는 대목이 있다. 실제 행정처가 지역구 경쟁자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진행 연기를 통해 이춘석 의원을 ‘공략’하려 하고, 이병석 의원에 대해 “(지역구) 발전을 위한 아이템을 적극 제공해 협조를 기대한다”고 계획한 사실이 지난달 31일 공개 문건에서 드러난 바 있다.

내용의 구체성에 비춰볼 때, 민간 법조인 사찰이나 국회의원 로비 등 행정처의 각종 부적절한 행위에 행정처장이나 대법원장까지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임 전 차장 유에스비(USB)에서 확보한 문건에도 처장 및 대법원장 보고용 문건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오찬회동 당시 ‘재판거래’ 관련 말씀자료를 지참한 사실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고영한 대법관은 이날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그는 행정처장(2016년 2월~2017년 5월) 재임 당시 국제인권법연구회 무력화 방안을 승인한 당사자다. 고 대법관은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면서도 “사법 권위 하락이 멈춰지고 사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퇴임한 김신·김창석 대법관도 “대법관들이 거래를 위해 법과 양심에 어긋나는 재판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퇴임사를 남겼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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