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마린’ 분석 결론
세월호 25.39분의 1 크기 선박
200회 이상 자유항주 모형시험
당시 조타각·화물·조류 등 적용하면
외부 충격 없이도 침몰 설명 가능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지난해 7월 출범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김창준 위원장(사진 맨 오른쪽)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선조위 서울사무소에서 활동 종료를 앞두고 지난 1년 1개월간의 조사 결과를 설명하기에 앞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는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MARIN)에 세월호 급선회와 침수·침몰 과정을 분석해달라고 의뢰했다. 선조위가 마린에 의뢰한 시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돌면서 급격히 45도로 기울어지는 과정(우선회 및 횡경사)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45도 기울어졌을 때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 점차 더 기울어지면서 가라앉는 과정을 분석했다.
세월호를 25.39분의 1 비율로 축소한 마린 9929번은 두 차례에 걸쳐 200회 이상 자유항주 모형시험을 실시했다. 모든 시험의 조건과 결과는 기록됐고, 표와 그래픽이 만들어졌다. 전체 모형시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세월호가 우현으로 빠르게 선회하면서 좌현으로 넘어지게 된 것은 타의 움직임과 세월호의 복원성 조건이 조합된 결과였다. 복원성이 좋지 않은 배에서 일정 각도 이상의 타각이 주어졌을 때 배가 선회하는 동시에 기울어졌다. 특히 마린은 모형시험에서 테스트한 모든 조건에서 세월호가 여객선 복원성에 대한 국제 규정을 만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여객선이 선회할 때 횡경사는 10도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큰 각도의 조타 명령이 있었다고 해도 배가 규정에 따라 10도만 기울어졌다면 세월호 내 화물은 이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린은 또 세월호는 최초 횡경사 이후에 복원성을 악화시키는 구조적 특성을 지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세월호는 일단 10도 정도를 기울고 나면 그 이후에는 대략 30도까지 비교적 빠르게 기울었다. 선수 부분이 좁고 선미 부분이 넓은 구조인데다 선미 차량 램프 구역의 움푹 들어간 넓은 공간이 복원성에 나쁜 영향을 미친 탓이다.
선조위는 추가로 마린에 외부 물체의 충돌이 배의 선회와 횡경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3차 실험을 의뢰했다. 모형배에 외력을 전달하는 윈치를 장착해 횡경사가 18도가 됐을 때 핀 안정기(선박 양 측면 날개 형태로 설치돼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 쪽에 힘을 주도록 했다. 하지만 이 실험이 마린의 결론을 바꾸지 못했다. 외력을 도입할 필요 없이 복원성, 타각, 화물과 평형수·청수·연료유 탱크 내 유체의 이동, 조류의 영향 등을 결합하면 세월호의 선회와 횡경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침수 지점은 세월호 C갑판 좌현 외편으로 뚫려 있는 루버 통풍구였다. 침수·침몰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컴퓨터 모의실험과 모형시험을 진행했더니 이 통풍구를 통해 배의 가장 밑바닥인 E갑판 기관실 구역에 있는 좌현 핀 안정기실이 침수된 것으로 추정됐다. 배가 45도 이상 기울어지자 파손된 C갑판 창문 등을 통해 더 많은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왔다. C갑판으로 유입된 물이 차량 이동용 경사로의 열려 있던 풍우밀문을 따라 D갑판으로 들어갔다. 선박 상부 객실 갑판들에 물이 차면서 배가 빠르게 기울었다. 승객들이 머물던 A갑판과 B갑판은 물의 흐름을 막아줄 격벽이 거의 없는 열린 구조인 탓에 불과 15~20분 만에 대단히 빠르게 침수됐다. 침수가 시작된 지 101분 만에 세월호는 침몰했다. 마린의 실험 결과, 물이 통할 수 없는 수밀문과 맨홀이 모두 닫혀 있었다면 세월호는 좌현 65도 정도의 횡경사를 유지한 채 더 오랜 시간 동안 떠 있었을 수 있었다. 이는 승객들의 탈출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