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 비리를 덮으러 재판에 개입한 의혹과 관련해 15일 문아무개(49) 전 부산고법 판사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문 판사 등에게 수십 차례 향응을 제공한 건설업자 정아무개(54)씨의 자택·사무실 등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다른 전·현직 판사들 압수수색 영장은 “재판 영향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석연치 않고 자의적인 이유로 또다시 전부 기각됐다.
문 전 판사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5천만원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2016년 부산고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던 정씨에게 재판 관련 정보를 몰래 빼내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검찰로부터 문 전 판사의 비위를 통보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 큰 논란이 일었다. 그러던 중 최근 사법 농단 의혹 수사 과정에서 당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문 전 판사의 비위를 덮기 위해 윤인태 부산고법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일을 1∼2회 늘리라”고 하는 등 재판에 개입한 정황을 담은 문건(2016년 9월 작성)이 검찰에 확보되면서 이 사건은 재점화 됐다.
이 문건에는 ‘판사가 재판 내용을 유출한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검찰의 불만을 줄이려면 재판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 ‘한 일간지 기자가 문 판사 비위에 관련해 문의를 해왔는데 무산됐다’, ‘법원행정처장이 고등법원장에게, 고등법원장이 재판장에게 연락한 사실이 배석판사들에게도 새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부탁한다’ 등등의 충격적인 내용도 등장한다.
검찰은 실제 정씨 재판이 문건 내용대로 진행된 점으로 미뤄 재판개입이 실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정씨로부터 문 전 판사와 함께 향응을 받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를 이용해 상고법원을 도입하려 문 전 판사 관련 의혹을 덮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다만, 문 전 판사와 정씨의 영장을 발부한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다른 전·현직 판사들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모두 기각했다. “문 전 판사의 행위나 법원행정처 작성 문○○ 관련 문건들이 그 재판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 “추상적 가능성만으로 압수수색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주거지와 사무실 등 압수수색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고 범죄혐의 성격이나 대상자에 대한 임의수사 시행 여부 등에 비춰 압수수색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에 검찰은 허 부장판사가 사실상 재판개입은 없었다고 미리 판단하고 현직 판사들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전담 법관이 법원행정처 문건들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예단하고, 임의수사 시행 여부 등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 과정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고 말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말에도 문 전 판사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 등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이후 현 전 수석과 문건을 작성한 당시 윤리감사관실 심의관을 소환해 사실관계를 확인해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했다.
아래는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에 대해 검찰이 이날 공개적으로 밝힌 입장문.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문○○ 당시 판사의 정아무개씨로부터의 향응 수수 및 정씨 비호 등 심각한 비위를 알고도 감사 관련 규정을 어기고 조치하지 않다가, 1년이 지나 언론 취재 이후 사태 전모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인을 동원해 언론 보도를 막고, 마치 항소심이라도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할 목적으로 부산고법 항소심 재판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 법원행정처장이 부산고법원장에게 위 보고서 내용대로 말할 말씀 자료를 작성한 사실, 이미 선고일이 정해졌던 부산고법 재판이 문건 내용 그대로 실제로 변론 재개되어 진행된 사실 등이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들과 이미 검찰 조사받은 윤리감사실 판사들 진술 등으로 확인된 상황에서, 영장전담법관이 이러한 법원행정처 문건들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예단하고, 임의수사 시행 유무 등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 과정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대단히 부당함.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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