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지난 5월7일 낮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0년 중단된 주미 대사관,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파견을 되찾아야 한다.”(2012~13년 법원행정처 문건)
“조태열 외교부 차관을 만나 징용소송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협의했습니다. 대사관에서 외교부에 (법관) 파견 건의 공문을 보내라고 대사님께 말하도록 조언 받았습니다.”(2015년 6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송영완 주오스트리아 대사에게 보낸 이메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법관 해외파견 자리를 늘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에 사활을 걸었다. 2006년부터 두 차례 파견이 이뤄지다 2010년 갑자기 중단된 자리부터 회복하는 것이 법관 해외파견 확대 명분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행정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2013년 9월에 낸 소송을 연기하는 방안을 담은 문건과 오스트리아 법관 파견 재개 문건을 집중 생산했다. 2015년 6월에는 임종헌 행정처 차장이 직접 외교부 차관을 접촉하고, 주오스트리아 대사에게 파견 자리를 청탁하는 이메일도 보냈다.
하지만 17일 <한겨레> 취재 결과, 당시 외교부는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에는 검사 파견이 더 적합하다”며 양해를 구하며, 대신 행정처 쪽에 같은 유럽권인 주제네바 대표부 파견을 ‘역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압수한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의 역제안은 2016년 말에 이뤄졌다고 한다. 행정처는 이를 수용했다. 지난해 초 주제네바 대표부 법관 파견이 결정됐고, 실제 같은해 6월부터 법관이 파견됐다. 기존에 ‘법관 티오’가 없던 곳인데다 일반 대사관과 달리 국제행사에도 자주 참석할 수 있어 판사들 사이에 선호가 높다고 한다.
그간 판사들은 오스트리아 법관 파견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징용 소송 지연과 맞바꾸는 ‘재판 거래’는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징용 소송 관련 부처인 외교부가 오스트리아 대신 ‘같은 급’인 제네바 파견을 다시 제안하고, 행정처가 이를 수용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법원의 해명은 힘이 빠지게 됐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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