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9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해 앉아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양승태 대법원이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를 이용해 ‘외부 비공개’인 재판관들의 평의 내용까지 빼내 보고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 범죄로, 대법원의 헌재 견제 공작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특수1부(부장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20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사무실과 자택, 최아무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업무일지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최 판사가 헌재 파견 근무(2015년 2월~2018년 2월) 당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 전 상임위원 지시로 연구관 보고서와 재판관들의 평의 내용을 빼내 이 전 상임위원 이메일로 전달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판사가 유출한 내용 중에는 △긴급조치 피해자의 국가배상소송 패소판결 △과거사 사건 국가배상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줄인 판결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을 경우 청구권을 제한한 판결 등 3건의 사건을 비롯해 다수 헌법소원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이 사건들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할 경우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이런 점을 우려해 은밀히 헌재 내부 사정을 보고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행정처 문건에는 “최 판사로부터 내부정보를 받아 대응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현재 검찰은 대법원으로부터 관련 문건을 임의제출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법원은 이날도 통합진보당 소송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이진만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또 기각했다. 해당 행정처 심의관들은 이 전 상임위원 지시로 통진당 소속 지방의원직을 박탈하는 ‘기획소송’을 내는 방안을 짜고, 외부 보고용 문건도 따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문건이 청와대 전달 목적으로 작성된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고 있다. 법원은 이번에도 “(행정처의) 임의제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등의 사유를 들었다고 한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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