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전범기업 상대 소송과 해외 법관 파견을 ‘맞거래’한 시기에, 외교부는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면 20만명이 ‘떼소송’을 낼 것”이라는 논리로 사법부에 재판 지연을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한겨레> 취재 결과, 외교부는 2013년 11월 사법부 설득용 문건에 “강제동원 피해자로서 소송 제기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원고가 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전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일본기업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경우, 국내 소송 폭주로 인해 사법부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재판 연기를 설득했다고 한다.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2013년 서울고법과 부산고법은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이 피해자 9명에게 각 8000만원~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다시 확정되면 후속 소송이 대거 접수돼 판사들 업무 부담이 늘어날 거라는 취지다.
특히 외교부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최소한 ‘2015년 이후’가 돼야 한다는 마지노선도 제시했다고 한다. 당시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책임을 처음 인정한 2012년 5월24일부터 계산해 3년 뒤인 2015년 5월23일까지 소송을 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나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내야 한다는 민법 규정을 고려한 분석이었다. 설령 대법원이 승소를 확정하는 판결을 하더라도, 이후 이 판결 내용을 접한 다른 피해자들이 소송을 내는 걸 막으려고 외교부가 날짜까지 촘촘히 ‘계산’한 셈이다. 과거사 해결을 위한 노력이나 국민 기본권 보장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이 문건은 2013년 12월1일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4자 회동’ 직전 만들어졌다. 2013년 10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만난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윤 전 장관이 징용 소송 전망과 함께 법관 해외 파견 요청을 ‘접수’한 직후이기도 하다. 윤 전 장관은 외교부 주장을 회동 당시 법원 쪽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부와 행정처가 지연을 ‘모의’한 강제징용 소송은 5년 동안 결론이 나지 않다가 지난달 갑작스럽게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외교부가 20만명으로 파악한 피해자 중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을 낸 피해자는 10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일부 피해자는 대법원 확정판결 뒤 소송을 내는 방안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징용 소송에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특례법을 발의했지만, 여당 쪽 반대에 부딪혀 끝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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