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고영한 전 대법관 등 관련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모조리 기각했다. “(검찰이)압수수색으로 취득하고자 하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매우 이례적인 이유였다. 근거 없이 노골적인 예단만으로 조직 방어에 나선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26일 “사법농단 수사 중, ‘전교조 법외노조화 소송에 대법원 행정처가 개입한 부분’,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심 사건에 대한 대법원 재판연구관 보고서를 유출한 부분’ 등의 수사를 위해 고 전 대법관 등 관련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영장전담법관이 모두 기각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고 전 대법관이 사건 주심을 맡았던 전국교직원노조 법외노조화 소송과 관련해 유아무개 수석재판연구관에게 파기환송 위주의 법리검토를 지시했다는 의혹 등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해왔다. 또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관심을 보인 대법원 계류 사건의 재판연구관 보고서를 행정처가 유출하는 데 고 전 처장 등이 관여한 정황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한다.
이날 검찰이 밝힌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 곳곳에는 영장전담법관(박범석 부장판사)의 ‘재판개입은 없다’ 선입관이 짙게 깔려있다. 박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장(고 전 대법관)이 직접 문건을 작성하거나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재판연구관 보고서 유출 관련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해당 재판 보고서를 작성하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낸 사실을 다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압수수색을 통해 취득하고자 하는 자료를 생성하거나 보관하고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를 거론했다. 최근 임 전 차장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그가 몰래 빼돌린 유에스비(USB)가 확보돼 ‘양승태 행정처’에서 작성한 8천여건 문건이 추가로 확인된 사실이나 조사대상 판사들이 조사에 협조하기는커녕 자신의 휴대전화를 파기하거나 업무일지를 파쇄하고 이메일을 삭제하는 등 지속적인 증거인멸을 벌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런 기각사유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검찰 입장이다.
박 부장판사는 또 ‘재판연구관실 압수수색은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 침해가 우려된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부분도) 현재 대법원에 본안 사건이 진행 중이므로,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 침해가 우려된다’, ‘법원행정처의 검토, 보고문건이 재판의 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 ‘압수수색에 앞서 먼저 소환조사나 임의제출을 요구하라’ 등등의 이유도 들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수사 대상자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는 조사 이전에 누구도 알 수 없다”며 “압수수색 대상자가 재판연구관 보고서 송부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다 인정할 것 같다는 아무 근거 없는 판사의 심정적 추측을 직접 기각 사유로 들기까지 했다”고 꼬집었다. 또 “영장 법관이 수사기관에 구체적인 수사 방식과 범위, 종국 판단에 대한 예단 등 수사지휘를 계속하고 있다”며 “재판의 본질을 침해한 범죄혐의에 대해 수사를 하면 재판의 본질을 침해한다는 동어반복적인 이유로 수사를 계속 막고 있다. 이미 법원 내외에서 재판과정 개입 단서가 다수 나온 상황에서 재판과정에 대한 수사 없이 이 사건 범죄혐의 규명은 불가능함이 명백한데도 비상식적 이유로 반복적으로 영장을 기각하는 것은 조사 없이 재판개입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달라는 노골적인 요구와 다름없다”고 공개 반박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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