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검찰 수사력의 핵심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를 ‘1차 통제’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2016년 검찰 특수부의 ‘법관 비리’ 수사 확대를 막으려고 ‘검찰총장 낙마 시나리오’까지 작성한 정황이 드러났다.
26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최근 압수한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유에스비(USB) 저장장치에서 2016년 8월17일 작성된 ‘김수천 부장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확보했다고 한다. 문건 작성 시점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김수천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처음 수사 선상에 올린 직후였다. 문건에 기재된 ‘작성자’는 정씨 관련 각종 영장 내용을 보고받는 자리에 있던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그 전임자인 임성근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김 부장판사 외에 다른 법관 3명을 거론하며 ‘검찰 수사 태도로 볼 때 다른 판사들에게로 수사 확대가 예상된다. 수사 착수를 차단해야 한다’고 분석한 뒤, 대응방안으로 정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2014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김수남 검찰총장이라는 사실을 매개로 검찰 수사를 압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당시 검찰은 과거 정씨가 두 차례 무혐의 받는 과정에 관여한 검사 등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에 문건은 ‘중앙지검장이 무혐의 처분을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한 뒤 ‘(이런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는 순간 (정씨 수사 청탁 혐의를 받는) 홍만표 변호사의 성공한 로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을 담기도 했다고 한다. 문건은 또 김 총장의 서울대·사법연수원 동기인 임종헌 차장이 직접 김 총장을 만나 이런 취지를 전달하는 방안과 함께 ‘김 총장이 (수사 확대를 하지 말라는) 제안을 거부할 경우 (앞으로) 검찰의 특별수사에 (법원이) 엄격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협박’에 가까운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또 이와 관련해 당시 법원행정처가 정씨 관련 다른 사건 재판기록을 대법원으로부터 불법적으로 넘겨받아 ‘검찰 수사 6가지 의혹’을 추려 언론에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한 정황도 확인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압수수색 대상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검찰이 청구한 고영한 전 대법관과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무더기 영장 기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그간 검찰 조사를 받은 현직 법관 일부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 “뒷판을 열고 송곳으로 찍은 뒤 버렸다”, “절에 불공 드리러 갔다가 잃어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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