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외부위원 등이 참여하는 별도의 사법행정구조 개편 추진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의 행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데도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일선 판사들이 ‘경고’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법관회의는 10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임시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의 남용을 방지하고 법관의 독립을 충실하게 보장하기 위하여 현행 사법행정구조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며 “사법행정구조의 개편을 추진하기 위해 법관회의 추천 법관, 외부위원 등이 참여하는 별도의 추진기구가 필요하다”고 결의했다. 법관회의 관계자는 “행정처가 개편 대상인데 어떻게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겠냐는 일부 논란에 대해 대표기구인 법관회의나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별도의 위원회에서 (행정처 개편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법관회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행정처 폐지 △사법정책 및 사법행정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회의체·결정사항 집행기구·대법원 운영 사무국 분산 △대법원 운영 사무국과 집행기구의 인적·물적 분리 △집행기구에 상근판사 배제 △법관 인사 심의기구 별도 설치 등을 제시했다. 외부위원이 다수 참여하는 사법발전위원회(위원장 이홍훈 전 대법관)의 건의 사항과 비슷한 내용이다.
‘사법부 변화와 개혁’을 내세운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주체였던 행정처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제대로 된 게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4월 발족한 사법발전위원회에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의 논의를 맡겼다. 그러나 위원회의 건의 사항은 아직 대부분 현실화되지 않았다.
특히 위원회가 격론 끝에 지난 7월 설치하라고 결의한 ‘사법행정회의’는 대법원장이 독점하던 인사·예산 등 사법행정권을 외부인사까지 참여하는 투명하고 수평적인 의사결정기구에 분산하는 기구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행정처는 지금까지 “내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겠다”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 판사는 “위원회가 중요한 사안을 건의해도 행정처는 하겠다는 말만 있지 실제로 한 게 없어 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대법원장이 행정처 개혁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판사도 “현 법원행정처장은 사법 농단과 관련해 ‘뚜렷한 범죄 혐의가 없다’는 부실한 결론을 내린 특별조사단 단장이고,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했으며, 기획조정실장도 개혁에 미온적이다. 행정처의 구성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들에게 행정처 개혁을 맡겨두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그간 법원 안팎에서는 행정처 개혁을 행정처에만 맡기지 말고, 외부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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