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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빼돌린 재판기록’ 영장 기각 뒤 파기… 법원이 증거인멸 방조

등록 2018-09-10 22:38수정 2018-09-11 11:18

2월 퇴직 유해용 전 대법 수석연구관
‘재판거래 의혹’ 포함 수만건 유출 의혹
법원, 압수수색 영장 2차례 기각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는 안 된다”
검찰 “진실 가리려는데 수사 막아”
함께 근무한 판사가 영장 심사
사흘간 검토하는 동안 자료 파기
서울 서초동 대법원.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서초동 대법원. <한겨레> 자료사진
차관급(고법 부장)인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퇴직하며 뭉치째 들고 나간 재판기록을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이 또한번 정면으로 충돌했다. 법원은 10일 해당 전관 변호사의 압수수색 영장을 재차 기각했고, 검찰은 “수사를 막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더구나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이에 해당 변호사는 빼돌린 재판기록을 모두 파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 미적거리다 증거 인멸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앞서 검찰은 유해용(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가 지난 2월 퇴직하면서 선임·수석재판연구관 근무(2014~16년) 시절 재판연구관 보고서 등 대법원 재판기록 수만 건을 빼돌린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특히 검찰은 그가 민사사건을 담당하는 연구관들에게 “작성한 보고서를 모두 유에스비에 담아 보고하라”고 지시해 보고서 수천건씩을 제출받았다는 진술을 얻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유 변호사가 연구관 보고서를 수만 건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보고서 중에는 청와대에 ‘상납’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박채윤씨(비선진료 혐의로 기소된 김영재씨의 부인) 소송 관련 자료뿐 아니라 통합진보당 소송, 일제 강제징용 민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행정소송 등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된 다수의 자료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 변호사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것도 그가 박채윤씨의 특허소송 관련 정보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건넨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은 청와대와 지속해서 접촉한 ‘재판 거래’ 의혹의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7일 검찰이 재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이날 기각했다. 압수수색 영장을 사흘이나 검토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박 판사는 기각 사유로 “대법원 재판자료를 반출해 소지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는 안된다”고 밝혔다고 한다. 공무상 비밀누설,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절도 등에 대한 형사책임은 부인한 채 “부적절한 행위”로 정리하며 수사를 막은 것이다.

법원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압수수색 영장을 거듭 기각하는 사이 유 변호사는 빼돌린 자료를 모두 파기했다고 한다. 유 변호사는 이날 영장 기각 뒤 재판기록 회수를 요청해온 대법원 쪽에 “(지난 6일 2차 영장기각 뒤) 출력물은 파쇄했고, 컴퓨터 저장장치는 분해해서 버렸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앞서 유 변호사는 지난 5일 첫 압수수색 영장 집행 때 “(유출 문건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서약서까지 검찰에 낸 터였다.

검찰은 이날 “(불법 재판기록 반출에 대해) 진실과 책임소재를 가리자는 것인데 수사를 무조건 막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런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날을 세웠다.

영장을 기각한 박범석 판사가 2014년 유 변호사와 함께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던 사실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박 판사는 ‘불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스스로 (영장발부 심사를) 회피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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